유럽의 몰락을 바라보는 좌·우파 그리스도인
밴쿠버동산교회 장천득 목사
프랑스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유럽은 그런대로 살만했습니다. 사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처지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유로존은 솅겐 조약으로 국경이 열려 인구 이동이 자유롭고, 유로화를 함께 쓰는 경제 공동체이자, NATO라는 울타리로 묶인 안보 공동체입니다. 한마디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운명공동체인 셈입니다.
얼마 전까지 유럽의 리더였던 프랑스는 현재 경제 파탄, 정치적 극단화, 과도한 사회복지, 그리고 폭동과 이민·난민 문제 등의 후유증을 혹독하게 겪고 있습니다.
현재 유로존이 안고 있는 문제는 고비용·저성장 구조, 과잉 복지, 이슬람 등 극단주의의 유입과 난민 문제, 사회적 불평등 등 열거하기조차 버겁습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이러한 구조적 개혁을 이루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과도한 부채와 민생 파탄, 그리고 사회적 폭동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유로존을 이끌어온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사실상 미국, 중국, 러시아 덕분에 풍요를 누려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일정 부분 수긍이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안보의 미국 의존: 미국이 NATO 방위비의 60% 이상을 부담해 왔으니, 안보는 사실상 미국이 책임져온 셈입니다.
중국발 저가 물품: 유럽은 중국의 값싼 물품을 수입하며 풍족한 소비 생활을 누렸습니다.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 독일 메르켈 전 총리 시절처럼 러시아의 값싼 천연가스를 들여와 제품을 만들고, 이를 다시 미국과 중국에 수출해 먹고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세 가지 공식은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전쟁과 국제 정세의 변화로 이 모든 구조가 불가능해졌고, 어느 것 하나 풀어가기 힘든 난국에 처했습니다.
미국 역시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더 이상 예전의 미국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간 이어져 온 ‘미국 중심의 슈퍼파워 질서와 번영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많은 전문가도 이에 동의합니다. 지금 미국이 다소 이기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국 우선주의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입니다.
1경 원을 웃도는 천문학적인 국가 채무, 그동안 달러를 무제한 찍어내며 인플레이션을 수출해 온 여파로, 정작 미국 자체도 고물가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10만 달러의 연소득으로도 한 가정이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겹습니다. 국가 부채로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습니다.
중국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과도한 부동산 경기 부양과 천문학적인 부채,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비록 첨단 기술의 상당 부분에서 이미 미국을 앞질렀고 10년 안에 미국을 능가하는 패권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내부적인 붕괴 징후 또한 적지 않아 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역사는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실력 없고 무능한 좌파 정치인들을 좋아할 이유가 없듯, 비도덕적이고 기득권에 탐닉하는 우파 정치인들 역시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가 중요하다고는 하나, 결국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을 뿐입니다.
거시적으로 볼 때 물가나 부동산 가격은 결코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의 속도를 생활비 벌이가 따라가지 못하니, 사람들은 갈수록 돈에 쪼들리며 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기울어진 운동장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돈은 소수에게 몰리고 구조적 불평등은 심화되며, 좌파는 더 극좌로, 우파는 더 극우로 치달을 것입니다. 살기 위한 밥그릇 싸움과 전쟁을 과연 멈출 수 있을까요? 든든한 형님이었던 미국의 영향력도 약해진 지금,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캐나다에서 보낸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위상은 놀라울 정도로 변했습니다. 세계적인 격변 속에서도 한국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인적 자원, K-문화, 방산, 그리고 제조업 경쟁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분단 반도국가가 세계적 리더십의 위치에 올라섰고, 이제 전 세계가 한국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의 바탕에는 기독교가 정신적 근간과 틀, 그리고 단단한 기초가 되어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교회는 너무 대형화되고 기업화되면서 정치색을 띠게 되었고, 또 하나의 기득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문명사적 전환기라는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한국에 지금은 유례없는 역사적 기회이자, 동시에 거대한 영적 위기입니다.
가장 걱정되는 점은 초고령화와 저출생, 탈종교화, 그리고 지나친 경쟁과 빠른 변화의 속도입니다. 너무 빠르게 성장한 나머지, 사회 전체의 정신적 적응력과 회복탄력성, 영적 성숙과 대처 능력이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트렌드와 급류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요? 정신적 패닉 속에서 영적인 기초 체력이 이미 무너져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급류에 휩쓸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와 함께 절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이제 생존 자체가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생존을 넘어 참된 ‘생명’을 향해 살아가려면, 어쩌면 연어처럼 목숨을 걸고 온몸이 상
하더라도 저 거친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강대국인 미국이나 좌파우파 정치인들, 혹은 거대한 대형교회가 세상을 책임지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걸까요? 그 근거를 어디서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오히려 깨어 있는 소수의 사람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횃불을 들고, 무너져 가는 성벽의 틈새를 기도로 막아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