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예함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 당선작 <사랑상> 홍연지/수필
주은혜교회, Centennial Secondary School Gr. 11
미지근한
‘Lukewarm’. 캐나다에 와서 새롭게 배운 단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뜻은 ‘미지근한’ 상태를 뜻하지만 나에게 이 단어는 단순히 온도를 넘어 삶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이다. 나는 미지근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너무 뜨거워 데일 일도 없고, 너무 차가워서 얼어붙을 일도 없는 딱 적절한 온도의 선. 그 적당한 거리감은 언제나 나를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차갑게 외면할 용기도 없었던 상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믿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 내 삶의 모든 것을 내어드릴 열심도 아닌 그 사이 어중간한 관계였다. 그런 잔잔한 나에게 하나님은 그 온도를 끓도록 만드셨다. 그리고 어느새 미지근할 줄 알았던 나의 온도도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막 캐나다에 온 지 6개월 차가 된, 이른바 ‘캐나다 새내기’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베트남이라는 또 다른 나라에서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내 삶의 뿌리를 내리고 모든 나의 삶을 안정화 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안정을 넘어서 나의 학업, 관계, 그리고 일상생활은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다. 평일에는 학교와 학원, 과제의 반복이었으며 주말에는 봉사활동과 대회 준비, 동아리 활동까지 열심히 달려갔다. 누구나 떠올릴 법한 전형적인 한국 고등학생의 삶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매주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로 향해 찬양팀으로 서고 주일학교 봉사를 하며 하나님에 대한 관심도 잃지 않았다.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삶. 어쩌면 지루할 법한 이 삶의 온도를 나는 그 누구보다 만족했다. 너무 뜨겁게 올라 스트레스받을 일도, 차갑게 식어 방황하는 일도 없는 그 적절함이 나의 삶을 유지하고 지켜주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견고한 울타리는 한순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캐나다라는 새로운 환경의 변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캐나다에 갈 수도 있다 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내가 그토록 유지해 왔던 안전한 온도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변화의 시작은 2025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해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본 이 변화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모한 선택처럼 내게 다가왔다. 어쩌면 입시를 앞두고 가장 치열하게, 동시에 가장 안정적으로 보내야 할 고2 시기에, 이제 와서 모든 것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은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였다. 학업에 집중하기도 바빴던 나의 삶에 이런 변화는 없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었다. 불안이 찾아오자 나는 급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의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을 묻기보다는 간절한 애원에 가까웠다. ‘가기 싫어요’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기라도 한 듯, 연초부터 신청했던 캐나다 비자는 1학기가 다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비자가 나오지 않는 하루하루가 길어질수록 내 마음 한구석에는 ‘어쩌면 안 갈 수도 있겠다’라는 안도감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나와 달리 부모님은 확고하셨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분명 예비하신 길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채 비자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1학기가 끝나기 전 부모님은 나와 동생들의 학교 전학 처리를 마치셨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은 고등학생 때 전학을 가면 행정적으로 ‘자퇴’ 처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자퇴는커녕 일탈도 없었던 내 인생에서 자퇴는 엄청난 파동이었다. 서류에 적힌 ‘자퇴’라는 두 글자가 주는 충격 때문이었을까.
비로소 나는 캐나다라는 변화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직감했고, 조심스럽게 주변 친구들에게 이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인 비자로 인해 언제 나올지, 아니 나올 수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별을 고하는 마음은 늘 허공에 붕 떠 있었다. 이제는 온 가족이 확정된 결과만을 기다리며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냈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 여름방학마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결국 부모님은 2학기 개학 전까지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베트남에 남기로 결정을 내리셨다. 받아들일 준비도, 이별할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나는 나대로 입시를 준비하며 폭풍 같은 시간 속에 던져졌지만, 나 역시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나의 솔직한 심정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신뢰보다는 현실적인 걱정이 앞서 있었다. 비자가 안 나오면 이미 자퇴 처리한 학교와 작별 인사를 나눈 친구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라는 나의 민망함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기적은 벼랑 끝에서 일어났다. 새 학기 개학을 단 하루 앞둔 8월 13일, 우리 가족은 마침내 비자를 받게 되었다. 보고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보지 않고 믿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이 극적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미지근했던 믿음을 진정으로 고백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걷게 하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 가족의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셨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평온하고 안정된 삶 속에서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님은 나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발견할 수 있도록 나의 잔잔한 일상에 파도를 일으키셨다. 그리고 그 폭풍 같은 변화조차 사실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의 일부였다. 비자가 나온 후, 나에게는 뜻밖에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다. 그 시간 덕분에 방학 동안 준비해 온 언어 시험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들과 충분히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별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 마음을 정리하고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익숙한 땅을 떠나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잘 살아냈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리고 동시에 다짐했다. 앞으로 펼쳐질 하나님의 새로운 땅에서는, 이전보다 한 걸음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겠다고. 그리고 현재 나는 여전히 미래에 대한 수많은 고민을 마주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불안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는 내 삶의 중심이 ‘나’가 아닌 ‘하나님’의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어떤 미래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함께하심을 믿는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을 따르기에, 그리고 그분이 지금도 내 곁에 계시기에 나는 더 이상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이제 내 마음의 온도는 ‘적당함’이라는 핑계 뒤에 숨은 미지근한 그런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열정으로, 그리고 도전으로 나는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이 새로운 땅을 또다시 걸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