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회 예함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 당선작 <소망상> 김시온/수필- 침묵하시는 하나님 곁에서
밴쿠버 평안교회 École Riverside Secondary Gr. 9
기도를 하려 책상에 앉지만, 끝내 하지 못한다. 방안은 조용하고, 비는 더 거세게 창문에 깨진다. 책상 옆 스탠드는 나를 더 부추기듯 환하게 빛난다. 책상 위에는 내가 읽지 못한 책이 쌓여 있고, 그 옆에는 성경책이 쓸쓸히 놓여 있다. 하나님께 할 말이 없던 건 아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기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많은 말을 하나님 앞에 털어놓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국 잠에 든다. 나는 기도를 미뤘고, 미루는 일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기도를 미룬다는 건 단순하고 작은 행동이었지만, 그 속에는 나의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쌓여 있다. 기대했다가 또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은 마음, 괜히 진지해졌다가 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실망할 것 같은 마음. 그렇게 나는 내 자신을 핑계로 설득하며, 하나님과의 거리를 점점 멀리 미뤄갔다. 그 거리는 어느 순간부터 편안 해져갔고, 편안해진 만큼 더 좁혀지는 것은 어려워졌다. 기도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변화는 찾아오지 않고, 나는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똑같은 죄를 지으면서, 그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다. 나의 고민을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나는 나의 믿음과 신앙을 점점 내 마음 더 깊숙한 곳으로 밀어버렸다. 이런 행동들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겉에는 멀쩡해 보여도, 생각으로 “난 괜찮다고” 다독여도, 나의 마음속의 두려움은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버렸다. 나는 하나님이 점점 아무 말씀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나를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침묵은 생각보다 큰 소음을 낸다. 아무 말이 들리지 않는 암흑 속에서 나는 더 많이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정말 계신 지, 나의 믿음은 헛된 믿음이 아닌지, 질문은 계속 흘러 들어오고, 대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럴수록 난 오히려 하나님을 더 피하게 됐다.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보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게 덜 아프지 않을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하나님에게서부터 제일 멀리 있었다. 믿음은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고, 나의 신앙은 나를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점검하는 기준이 되었다. 나의 믿음은 참된 믿음인지, 제대로 기도하고 있는지, 남들만큼 잘하고 있는지.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마저 부담이 되었다. 잘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기도하지 않은 채로 하루를 보내고, 심지어 성경책에서도 손을 점점 떼버렸다. 다음날이 오면 또 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보냈다. 어떨 때는 변화를 결심하고 잠에 들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이런 반복된 실패는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는 사실보다, 내가 그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나는 하나님의 침묵을 부재로 해석했고, 응답이 없다는 이유로 그분의 존재를 의심했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그 시간들 속에서도 완전히 혼자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기도하지 않은 날에도 하루는 흘러갔고, 나는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들, 예를 들면 누군가의 따뜻한 인사나, 친구들과의 작은 순간들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완전히 버려진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제야 질문을 바꾼다. “왜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지”가 아니라, “왜 나는 하나님의 침묵을 그렇게 두려워할까?” 하는 질문이었다. 어쩌면 나는 꼭 하나님의 응답을 들어야만 함께 계신다고 믿고 있던 건 아닐까. 응답이 없으면 곁에도 없을 거라고, 너무 쉽게 단정 지은 건 아닌가. 생각해 보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과도 말이 없는 시간은 존재한다.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는 순간들. 그 순간들은 결코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관계를 더 단단히 묶어준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나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 속에서 허락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응답이 없는 침묵은 나에게 부재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침묵은 나를 무시하시는 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기다려 주시는 것 같았다. 내가 준비 안 된 말들을 억지로 뱉어 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의문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왜 그렇게 침묵하셨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침묵을 바로 부재로 단정 짓진 않는다. 말씀이 없다고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나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기도는 쉽지 않다. 여전히 하나님은 조용하시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침묵이 나를 숨 막히게 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실 때도, 나와 함께 계실 수 있다는 생각이 낯설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의 믿음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기도를 건너뛰는 날도 많고, 침묵이 두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나님이셔도, 나는 여전히 그분 곁에 나란히 서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사실은 나를 갑자기 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 덜 도망치게 해준다. 오늘 살아가고 있는 하루도, 여전히 조용한 하나님 옆에서, 나는 완벽하지 않은 채로 서 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하루를 살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