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직함으로의 여정, 스스로 정직해지는 시간
사람이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요? 목회자에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설교자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설교하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그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시간을 마주하는 순간이 바로 글쓰기 시간입니다. 글은 인쇄되는 순간 영원한 생명으로 재탄생합니다. 정직한 글쓰기는 정직한 생명을, 거짓된 글쓰기는 거짓된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정직한 글쓰기를 훈련하지 못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탄생시키는 일에 한계를 만나게 됩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글과 이야기를 훔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목회자들의 설교 베끼기와 설교 짜집기 같은 표절 시비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우리의 뇌에서 지우고 싶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부끄러움을 지우는 방법입니다. 전두엽에 박혀 있는 부끄럽고 괴로운 기억을 다른 곳에 저장하거나 옮기지 않으면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글로 정리하여 기록하지 않으면 선택적으로 편집하여 자신을 포장하는 언어로 사용하게 됩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이 목회자의 실체를 파악하기 시작한 것도 이 점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럴듯하게 포장되던 목회자들의 생각이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논리도, 정직함도, 감동도 사라져 버린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예화를 사용 합니다. 하지만 그 예화가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가 아님을 청중들은 금방 알게 됩니다. 이런 예화를 어디에서 가져 왔는지 알리지 않는 것도 정직하지 못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숨기고, 외부에서 가져온 생각이나 표현으로 채워진 글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가 설교문을 준비할 때 다른 목회자의 설교를 그대로 복사하거나 약간의 수정만 거쳐 자신의 설교인 것처럼 발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이 아닌 유명한 인물의 일화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꾸며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거짓을 포함하고 있으며, 독자나 청중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됩니다.
목회자가 정직한 글쓰기에 실패하면 가져오는 영향력은 무엇일까요?
첫째 : 진정성이 상실 됩니다. 그 설교는 진정성을 잃게 됩니다. 청중은 목회자의 진심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이는 신뢰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신념과 경험을 바탕으로 설교를 해야만 진정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둘째 : 영적 성장의 저해를 가져 옵니다. 설교 준비 과정은 목회자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의 설교를 베끼면 이러한 성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며 얻는 깨달음이 없이 단순히 다른 이의 내용을 반복하는 것은 영적 성장을 방해합니다. 정직함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함의 척도가 됩니다.
세번째 : 법적 문제 & 윤리적인 문제를 발생합니다. 표절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설교의 내용이 다른 목회자의 저작권을 침해할 경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목회자와 교회 모두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ChatGPT 와 같은 AI 의 등장으로 목회자의 글쓰기는 더욱더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의 정직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혼탁해지는 시대에 더욱더 혼돈 속으로 들어가는 시대를 맞이 하게 될 것입니다.
네번째 : 목회자의 신뢰도가 하락합니다. 설교가 표절임이 밝혀질 경우, 목회자의 신뢰도는 크게 하락합니다. 신뢰를 잃은 목회자는 더 이상 효과적으로 사역을 이어가기 어렵습니다. 교회 내외부에서 목회자에 대한 신뢰는 사역의 근간이 되므로, 이를 훼손하는 행동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AI 의 급격한 발전으로 미국의 대학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미국 대학 교육의 최대 목표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인 글로 표현하여 상대를 설득 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AI 가 박사 학위 논문 보다 더 뛰어난 글을 내 놓기 시작 하면 미국의 대학 교육이 의미 없어 지게 됩니다. 의미가 없는 글쓰기, 땀이 없는 글쓰기, 노력과 시간이 도둑맞는 글쓰기는 결국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신뢰성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결국 목회자의 글쓰기는 스스로 정직함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쓴 글을 딸들에게, 아내에게, 부모님께 날것 그대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날것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목회자의 글쓰기의 핵심은 있는 그대로 쓰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실 그대로 쓰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글의 분량입니다. 책으로 만들기 위해 적어도 200페이지의 글쓰기를 생각한다면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닙니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대부분 어렵게 느끼는 부분입니다. 어떻게 분량을 채울까 생각하면 글에 불필요한 서사가 붙기 시작합니다. 이런 서사가 글의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직하게 써 내려가야 할 목회자의 글쓰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됩니다. 서사가 길어지고 많아지면 감추고 싶은 자신의 날것을 서사로 가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글쓰기는 목회자가 스스로 용감해지는 순간입니다. 나 자신의 날것을 보여주어도 주눅들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순간이 됩니다. 정직한 글쓰기는 목회자의 자존심을 죽이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자존심이 높을수록 서사가 길어지고, 자존감이 낮을수록 자신을 포장하는 시간이 늘어갑니다. 날것의 재료와 언어로 쓰여진 글쓰기가 거칠게 느껴지겠지만, 그런 재료를 모아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는 몫은 성도들과 독자들이 해야 할 몫입니다. 정직한 글쓰기는 내 글쓰기의 원재료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나의 죄, 연약함, 열등감, 자존심, 소원, 생각, 삶, 느낌, 감정, 관계, 고통, 실패, 좌절, 눈물 등 날것으로 내놓을 수 있는 신선한 재료들은 사실 넘쳐납니다. 우리의 날것을 내놓기 위해 지금부터 칼을 갈고 준비하는 일이 목회자의 글쓰기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