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3)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손가락질 당하던 세리장 삭개오는 ‘잃어버린 자’였다. 그래서 더욱더 그는 예수님을 보기 원하였다.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볼 수 없게 되자 달려가서 돌무화과 나무에 오를 만큼 그는 간절히 예수님을 보기 원했다.
그런 삭개오를 예수님이 먼저 부르셨다. 그리고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라고 수군거리는 모든 사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에 유하시며 식사를 함께 하셨다.
삭개오는 이처럼 자신과 같은 죄인에게 베풀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며,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다고 회개의 실천을 결단했다. 이렇게 결단하는 그의 고백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그의 집에 구원을 선언하셨다(눅 19:9-10).
인자 곧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다. 삭개오처럼 모든 사람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오신 것이다. 그래서 삭개오처럼 죄인인 사람이 회개할 때 예수님은 그 사명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크게 기뻐하시는 것이다(눅 15:7).
그래서 삭개오의 결단은 예수님께 큰 기쁨을 드렸을 것이다. 더구나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여정의 막바지라는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 전에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셨다(눅 18:31-34).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해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다가 삭개오를 만나신 것이다. 따라서 고난과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의 심정을 생각하면, 삭개오의 결단은 예수님께 얼마나 큰 기쁨을 드렸을 것인가!
또한 삭개오는 예수님께 마음의 기쁨 외에도 몸의 쉼을 드렸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거리 22킬로미터, 고도 차 1,000미터의 오르막길이다. 그 힘든 길을 오르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서 유하신 것이다. 삭개오가 대접하는 식사를 드시고 그의 집에서 휴식하신 후에 예수님은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힘든 길을 오르신 것이다.
삭개오는 희년 정신을 실천하기로 결단한 의인이었다. 희년의 의인이었다. 그는 십자가를 목전에 둔 예수님께 기쁨과 쉼을 드렸다. 그는 예수님께 그 회개의 결단으로 기쁨을 드렸고, 그 즐거워한 영접으로 쉼을 드린 것이다. 삭개오처럼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고 희년 정신을 실천할 때 예수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삭개오에게 먼저 찾아오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먼저 찾아오신다. 부요한 것 같지만 실상은 곤고한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우리가 삭개오와 같은 희년의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바라시며,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계 3:20). 그리고 삭개오처럼 회개하고 희년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이와 같은 대각성이 일어나 우리 사회의 대개혁을 주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