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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년 이야기] 모세의 희년 정신(1)

human standing beside crucifix statue on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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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희년 정신(1)

출 2:11-12, “11.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된 모세가 장성한 후에 화려한 왕궁에 머물지 않고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본 이유는 무엇인가? 히 11:24-26에 의하면, 장성한 모세가 자기 형제들에게 간 이유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기 때문인데, “이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받는 고난’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모세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을 때 그 고난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 되는 것이다. 

한편 행 7:22-25에 의하면,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은 그 애굽 사람에게 히브리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고,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은 것이었다. 또 이를 통해 모세는 히브리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했다. 곧 모세는 히브리 사람들이 자신을 구원자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출 2:13-15, “13.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

모세는 히브리 사람들이 자신을 구원자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다음날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 가운데 잘못한 사람이 동포를 치는 것을 책망했다. 그러자 그 잘못한 사람이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고 모세를 힐난했다. 여기서 ‘다스리는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싸르’는 ‘통치자’, ‘지도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재판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솨파트’는 구약성경 사사기의 그 ‘사사’와 같은 단어이다. 

그래서 이 두 단어는 모두 당시 애굽 왕 바로에게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구원자’라는 뜻을 함축한 단어이다. 곧 그 잘못한 사람이 모세에게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고 한 말은 “누가 너를 우리의 구원자로 삼았느냐?”라는 뜻이다. “누가 너를 애굽의 종살이에서 우리를 구원할 자로 삼았느냐?”라는 말이다. 곧 그 히브리 사람은 모세를 자기들의 구원자로 삼기를 거부한 것이다. 

모세가 “일이 탄로되었도다”라고 말했을 때, 그 탄로된 일은 애굽 사람을 죽인 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히브리 사람들이 자신을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래서 자신이 히브리 사람들을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하려 한 일도 가리킨다. 단순한 애굽인 살인 사건이 아니라 민족의 해방을 위한 독립 운동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바로는 이 일을 들었을 때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 것이다. 만약 단순 살인 사건이었다면 바로가 이렇게까지 나서서 공주의 아들인 모세를 죽이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누리던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여기고, 자기 민족을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하기 위해 자기 인생을 걸었고 목숨도 걸었다. 독립 운동이 실패하고 붙잡히면 바로에게 죽임을 당할 것은 명확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받는 고난’으로 표현했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라고 기록했다. 이처럼 모세는 자기 목숨을 걸고 자기 민족을 구원하려 했던 것이다. 모세는 자기 민족을 위해 자기 기득권을 버리고 자신을 송두리째 바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뜻을 깨닫지 못했고 그 가운데 어떤 자는 그를 명백히 거부했던 것이다. 이에 모세는 자기 인생과 목숨을 건 민족 해방 운동의 실패, 그리고 자기 민족의 거부 때문에 깊은 상처를 안고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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