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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년 이야기] 룻과 보아스의 기업 무르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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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이야기] 룻과 보아스의 기업 무르기(13)

룻 4: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이 본문에 하나님의 ‘헤세드’(언약에 신실한 사랑)가 나타나 있다. 여호와께서 보아스와 룻에게 아들을 낳게 해 주시는 인애를 베푸신 것이다. 

룻 4: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에도 하나님의 헤세드가 나타나 있다. 여호와께서 나오미에게 기업 무를 자가 있게 해 주시는 인애를 베푸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기업 무를 자’는 보아스를 가리킨다. 베들레헴 여인들은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한다. 그리고 그 축복대로 ‘이 아이의 이름’은 장차 다윗 왕의 할아버지로서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 온 세계에 유명하게 된다. 

룻 4: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5절상,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베들레헴 여인들은 이 아이가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라고 말한다. 그 전에는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절망 가운데 죽어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 아이의 탄생으로 희망 가운데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베들레헴 여인들은 이 아이가 나오미의 노년의 봉양자라고 말한다. 이 아이가 장차 늙은 나오미를 봉양할 것이다. 여기서 이 아이가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이며 노년의 봉양자라는 것은 모두 이 아이가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의 가문에 양자로 입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5절하,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 베들레헴 여인들은 룻이 나오미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성읍의 여인들이 모두 알 정도로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극진히 사랑하고 섬긴 것이다. 그리고 베들레헴 여인들은 룻이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라고 칭찬한다. 룻기는 룻이라는 한 여성의 헤세드, 인애를 있는 그대로 정당하게 높이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을 부당하게 차별 대우하고 있는 한국 교회는 룻기를 통해 여성 차별을 반성하고 개혁해야 한다.

룻 4: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다. 엘리멜렉 가문의 아들로 입적된 것이다. 

룻 4: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여기서 그 아이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짓는다. 오벳은 엘리멜렉 가문의 아들이자 동시에 보아스의 아들이다. 오벳은 분명히 엘리멜렉 가문의 양자로 입적되었기 때문에 보아스의 다른 아들이 보아스의 가계를 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오벳이 보아스의 가계를 잇고 있다. 

룻 4:21-22, “21.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이 사실은 보아스에게 오벳 외에 다른 아들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곧 오벳은 엘리멜렉 가문과 보아스 가문 모두의 후손으로서, 보아스의 가계를 잇는 것이다. 요컨대 오벳은 보아스의 아들이자 동시에 엘리멜렉 가문의 아들이다. 

여기서 아이의 이름을 이웃 여인들이 지어준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것은 베들레헴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기울여 이 아이를 아끼고 사랑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러한 베들레헴 성읍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자 희년 공동체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룻기는 베들레헴이라는 신앙 공동체에서, 서로 원수 관계에 있던 민족들의 구성원들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헤세드’ 곧 ‘언약에 신실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서로 하나가 되어 희년 공동체를 이루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사례는 오늘날 신앙 공동체인 지역 교회 차원의 희년 실천에 귀중한 모범이 된다. 그리고 룻기에 나타난 헤세드의 정점에 보아스의 기업 무르기라는 희년 실천이 있는데, 이는 오늘날 그리스도인 개인 차원의 희년 실천에 아름다운 모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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