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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년 이야기] 욥기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2)

two men standing on seas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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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이야기] 욥기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2)

세 친구가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러 찾아와서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그와 함께 땅에 앉아 그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욥 2:11-13). 그 후에 욥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한다(욥 3:1). 그것은 자기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원망할 만큼 그의 고통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세 친구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욥에게 ‘네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와 같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라는 요지로 그를 책망하고, 이에 욥은 자신이 그런 악을 행하지 않았다고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그와 세 친구 사이의 길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된다(욥 4-31장). 

그 논쟁 가운데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욥이 권세를 이용하여 가난한 사람의 땅을 차지하는 토지 불의와 같은 악을 행했기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며 욥을 예단하여 정죄한다(욥 22:4-9). 엘리바스의 말 가운데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욥 22:8)를 새번역 성경은 다음과 같이 실감나게 번역하고 있다. “너는 권세를 이용하여 땅을 차지하고, 지위를 이용하여 이 땅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살았다.” 곧 이 말은 욥이 권세와 지위를 이용하여 불의하게 힘없는 이웃의 땅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엘리바스에 의하면, 무고하게 형제를 볼모 잡고 헐벗은 자의 옷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지 않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며, 권세와 지위를 이용하여 이웃의 땅을 빼앗아 차지하고 거기에 살면서, 도움을 요청하러 온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고아의 것을 빼앗기 위해 그의 팔을 꺾는 짓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악행이다. 이는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런 악을 욥이 자행했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다는 엘리바스의 말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욥이 권세를 이용해서 땅을 차지하는 등 불의를 자행했다는 엘리바스의 비판에 대해,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어기지 않고 귀히 여겼다고 항변한다(욥 23:11-12).

그리고 욥은 빈민의 참상을 언급하며 엘리바스에게 구체적으로 반론을 전개한다. 그 반론의 서두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이 바로 땅의 경계표가 옮겨지는 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한다(욥 24:1-12). 악한 부자들은 땅의 경계표를 옮긴다(2절). 곧 가난한 사람들의 땅을 빼앗아 차지한다. 그리고 그들의 양 떼를 빼앗아 뻔뻔하게 기르기까지 한다(2절). 또 고아의 나귀를 빼앗아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아 빼앗는다(3절). 

그리고 악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길에서 몰아내고 그 학대 받는 사람들이 모두 스스로 숨게 만든다(4절). 악인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이 길에서 이웃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길도 다니지 못하게 멀리 쫓아내고 학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악인들은 그 ‘비참한 사람들’(레 미제라블)의 그 비참한 모습 자체가 그 이웃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행한 짓이 얼마나 강포하고 비열한 악행인지를 시각적으로 너무나 잘 드러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빼앗기고 쫓겨난 사람들은 야생 나귀처럼 거친 광야로 나가서 그 빈들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5절). 또 그들은 정처 없이 유랑하면서 남의 밭에 몰래 들어가 그 꼴을 베고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서 겨우 연명한다(6절). 

그리고 그들은 입을 옷도 없어서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워도 덮을 것이 없다(7절). 또 집 없이 산 속에서 지내다가 소나기가 내리면 비를 피할 수 없어서 그대로 맞아 젖게 되며, 가릴 옷이 없어 바위를 안고 지낸다(8절).

또 악한 부자들은 가난한 가족에게 높은 이자로 빚을 꾸어준 후에 그것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아버지 없는 유아를 그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아 종으로 끌고 가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9절).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옷을 저당 잡아 빼앗아가므로 그 가난한 사람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게 만든다(10절). 이런 짓들은 모두 채무자인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속히 빚을 갚도록 압박하는 가혹한 추심 행위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헐벗은 채, 그 악한 부자들의 밭에서 곡식 이삭을 나르며 일하지만 품삯을 전혀 받지 못해 굶주린다(10절). 왜냐하면 그 품삯으로 받아야할 곡식을 모두 빚의 원금과 이자에 대한 상환 명목으로 채권자인 부자에게 원천징수 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자들이 힘없는 사람들로부터 빼앗아 독차지한 감람원과 포도원의 울타리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고 포도주 틀을 밟으며 일하지만 그 포도주를 조금도 마시지 못해 목말라 하면서 일한다(11절). 이와 같이 채권자인 부자들이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자기 밭과 포도원에서 강제로 일하게 만드는 것은,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신 25:4)라는 율법을 생각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짐승보다 못하게 대우하는 악행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빈민의 참상이 바로 땅의 경계표를 옮기는 것, 곧 힘없는 이웃의 땅을 빼앗는 악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욥은 토지 불의가 사회 불의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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