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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년 이야기] 욥기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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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이야기] 욥기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3)

욥기 24:1-12에 의하면, 악인들이 불의하게 가난한 이웃이 보유한 땅의 경계표를 옮긴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가문의 땅을 빼앗겼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품을 팔아 살다가 흉년이 들기라도 하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양식을 꾸고 빚을 질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때 악덕 채권자에게 옷을 저당 잡히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위에 떨고, 벌거벗은 채로 일해야 한다. 

또 땅을 빼앗겼기 때문에 악인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그 유아를 빼앗아 종으로 팔아넘기는 것도 막을 힘이 없게 된다. 땅이 있으면 그 땅에서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고 저당물로 빼앗긴 옷도 되찾고 종으로 끌려간 자녀들도 되찾을 수 있을 텐데, 땅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해 채권자인 악한 부자들의 밭에서 주리면서 곡식 단을 날라야 하고, 그들의 감람원과 포도원의 담 사이에서 목말라하면서 포도주 틀을 밟아야 한다. 

그런데 그 악한 부자들의 밭과 감람원과 포도원은, 거기서 일해서 빚을 갚으라는 그 부자들의 강요 때문에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바로 그 가난한 사람들이 빼앗겼던 그들 가문의 기업인 땅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가문의 기업인 밭과 감람원과 포도원을 악한 부자들에게 빼앗기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그 빼앗긴 땅에서 어떤 것도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한 채 강제 노동을 하는 상태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악인의 불의를 하나님이 즉각 심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욥과 같은 의인은 정의가 실현되는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날을 생각하면서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욥 24:1)라고 탄식한다. 그리고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라고 비관적인 절망에 빠져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악인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밝을 때에 일어나서 학대 받는 자나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욥 24:14)지만,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욥 24:18)다. 여기서 ‘소유’로 번역된 히브리어 ‘헬카는 제비를 뽑아 각 가족이 분배받은 기업인 땅을 가리킨다. 곧 이 반(反)희년의 악인들은 자기들이 빼앗은 가난한 사람들의 땅뿐만 아니라 자기 가문의 정당한 기업으로 물려받은 땅마저도 잃게 될 것이다. 

결국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욥 24:20).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욥 24:22-24). 욥은 친구들과 논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이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이 반드시 임할 것을 확신한다(욥 27:13-19).

욥은 이어서 지혜와 명철은 주를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욥 28:12).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욥 28:28). 이러한 지혜와 명철에 입각하여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했고 악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정의와 자비를 실행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욥은 당시 재판과 정치의 중심이었던 성문에서, 또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건져내었고, 불의한 자가 강탈한 빈민의 물건을 빼내어 빈민에게 되돌려주는 등 정의를 행하였다고 밝힌다(욥 29:7-17). 이것은 희년 정신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처럼 정의를 행한 욥에게 무리는 희망을 걸었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욥은 무리에게 길을 택하여 주고 으뜸 되는 자리에 앉아 왕처럼 무리를 다스리며 위로했다(욥 29:21-25).

그러나 욥은 고토에서 쫓겨난 천민들의 토지평등권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정의를 시행하지는 못하였다. 이것은 욥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욥의 당대에 땅을 잃은 천민들이 존재했다고 하는 것은 욥의 정의로운 정치가 그 천민들의 토지평등권 회복이라는 본질적인 차원으로까지는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욥은 고난을 당할 때 바로 그 천민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였고 그래서 그들을 저주하며 분노를 토한다(욥 30:1-15). 그러나 만약 욥이 그 천민들이 토지평등권을 회복하는 근본적인 정의를 실행했다면, 그는 그 천민들에게 조롱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오히려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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