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이야기] 욥기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7)
욥기에 “전능자” 또는 “전능하신 이”로 번역된 히브리어 ‘샤다이’ 역시 성자 하나님을 가리킨다. ‘샤다이’는 구약 성경에서 총 48회 나오는데, 그 가운데 욥기에만 무려 31회나 등장한다. 그래서 욥기는 가히 전능자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자 하나님은 개역개정 성경 욥기에서 “전능자”, “하나님…전능자”, “전능자…하나님” 또는 “전능하신 이”, “하나님…전능하신 이”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엘로아흐’, ‘엘’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두 단어는 같은 뜻이다(욥 27:10-11). 다시 말해서 ‘엘’은 ‘엘로아흐’의 축약어인 것이다.
욥기에서 한 절에 “하나님…전능자(전능하신 이)”, “전능자…하나님”이 등장할 때, ‘하나님’과 ‘전능자’는 같은 의미의 평행 관계에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전능자’가 두 절에 걸쳐 나타날 때, 문맥상 동일한 대상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욥기에서 ‘전능자’는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래서 ‘전능자’(샤다이)는 구약 오경에 나오는 ‘전능의 하나님’(엘 샤다이)의 약어인 것이다. 그런데 ‘전능의 하나님’은 구약 오경에서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욥기의 ‘전능자’는 바로 성자 하나님이신 것이다. 구약 오경에서 ‘전능의 하나님’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상세히 다루려 한다.
욥이 회개한 후에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에게 노하시며 그 이유로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욥 42:7)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세 친구에게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욥 42:8)라고 말씀하신다. 세 친구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자 하나님은 욥을 기쁘게 받으신다(욥 42:9). 곧 욥은 세 친구를 위해 기도하면서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하나님은 욥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세 친구의 번제도 기쁘게 받으신 것이다.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의 관계도 회복된다. 욥은 자신을 부당하고 집요하게 비난한 세 친구를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욥과 세 친구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구약 시대에 번제를 매개로 일어난 이 총체적 관계 회복(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친구들과의 관계 회복)은, 신약 시대에 희년의 하나님 나라에서 예배를 통하여 일어나는 총체적 관계 회복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하나님은 욥과 그 형제자매들, 지인들과의 관계도 회복시키신다(욥 42:10-11). 욥이 자기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이전 소유보다 갑절을 주신다. 그러자 욥의 형제자매들과 지인들이 모두 욥의 집에 와서 함께 음식을 먹고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그에게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선물로 준다. 욥과 그들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하나님은 욥의 말년에 처음보다 더 복을 베푸신다(욥 42:12-17). 가축의 수는 욥기 1장에서 그가 처음에 갖고 있던 것의 두 배이다. 그리고 아들과 딸의 수는 처음과 같다. 다른 점은 그의 소유물 가운데 종들이 많이 있었다고 처음에는 명기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욥이 자신의 무고한 고난을 통해 종들의 무고한 고난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체휼하게 되어, 살아남은 소수의 자기 종들을 해방하고 이제 두 배로 늘어난 가축을 치는 데 사람들을 종이 아니라 품꾼으로 고용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사람을 종으로 취급하지도 않고 또 재산 목록에 올리지도 않은 것은 희년 정신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희년의 토지 평등권과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이 나온다. 욥이 자기 딸들에게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기업(땅)을 주었는데(욥 42:15), 이는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딸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지만, 아들이 있는 경우에는 딸에게는 주지 않고 아들에게만 주는 레위기의 희년 토지법보다 토지 평등권 측면에서 더 진일보한 것이다. 남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자녀에게 기업을 평등하게 주는 욥의 토지 분배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평등하게 창조하시면서 그들에게 땅을 정복하라는 복된 창조 명령을 주실 때 하나님이 본래 품으셨던 뜻에 더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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