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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복음의 씨앗을 열매 맺게 하라

복음의 씨앗을 열매 맺게 하라

예수님께서는 1세기 갈릴리 지역의 청중들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기초해서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미 함께 생각해 본 것처럼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인식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깨닫고 돌아와 용서함을 받기 위함입니다.

마가복음 4장 2b-20의 다섯개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교차 대구법(fivefold Chiastic Structure)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막 4:2b-9)는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의 해석(막 4:14-20)과 대구를 이룹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는 씨를 뿌리는 농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농부가 씨를 뿌리는 땅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에 등장하는 네 가지 땅은 길가, 흙을 많이 갖고 있지 않은 돌밭, 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입니다. 각각의 땅은 특징을 갖고 있는데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은 농부가 뿌린 씨앗이 성장할 수 없는 조건을 갖고 있지만, 좋은 땅은 농부가 뿌린 씨앗이 성장하여서 열매를 맺게 합니다.

먼저 우리는 각각의 땅의 특징을 생각해 보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의 해석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막 4:2b) 그(예수)의 가르침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 “들으라. 보아라, 씨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리고 그가 [씨를] 뿌릴 때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고, 새들이 와서 그것을 먹어 버렸다. (5) 또 다른 (씨)는 흙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돌밭 위에 떨어졌고, 흙이 깊지 않았기 때문에 즉시 자랐지만, (6) 해가 떠올랐을 때 뿌리가 말랐기 때문에 타버렸다. (7) 또 다른 (씨)는 가시덤불들 속으로 떨어졌고, 가시덤불들이 자라서 그것을 질식시켜서 열매를 맺지 못했다. (8) 또 다른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졌고, 싹이 나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었다. 어떤 것은 삼십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백 배를 맺었다. (9) 그리고 그(예수)가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Translated by YG Kim)

먼저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각 땅의 특징을 생각하기 전에 씨앗이 떨어져 열매를 맺기 위한 좋은 땅의 조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려서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란 물과 공기와 온도의 삼 박자가 맞아야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면 길가와 돌밭 그리고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은 어떠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첫 번째 땅은 길가 위에 떨어진 씨앗입니다(막 4:4a). 길가는 씨앗이 떨어져 자라나기 어려운 땅입니다. 그 이유는 교통 수단으로 사용이 되는 좋은 길이란 단단한 땅이기에 씨앗이 떨어져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길가 위에 떨어진 씨앗은 새들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막 4:4b).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번째 땅은 흙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돌밭입니다(막 4:5a). 돌밭의 표면에는 흙이 덮여 있기에 땅의 겉 모습으로는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돌로 인하여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수분을 충분히 가져올 수 없으므로 해가 떠올랐을 때 씨앗이 말라 죽었습니다(막 4:5b-6).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 번째 땅은 가시덤불 속의 땅입니다(막 4:7a). 가시덤불은 성장이 매우 빨라서 뿌리가 깊고 널리 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농부가 뿌린 씨앗이 가시덤불 사이에 떨어졌다면 그 씨앗은 가시덤불로 인하여 햇빛을 받을 수 없고, 뿌리를 내릴 수도 없어서, 그 결과 질식하여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막 4:7b).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싹이 나고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막 4:8).

특별히 우리가 마가복음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을 표현하는 ‘어떤’ 또는 ‘다른’(allo)이라는 지시 형용사는 단수로서 하나의 씨앗이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을 표현하는 ‘다른’(alla)이라는 지시 형용사는 복수로 여러 개의 씨앗입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을 포함한 무리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예수님의 주변에 있었던 자들이 제자들과 더불어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에 관하여 질문하였습니다(막 4:10).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들에게 비유의 목적(막 4:11-12)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난 후에 예수님께 질문하는 자들을 책망하시고(막 4:13),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에 관하여 설명해 주셨습니다.

(막 4:14) “씨를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린다. (15) 이것(씨앗)들이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이 그곳에 뿌려지고 그들이 들었을 때,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16) 그리고 이것(씨앗)들이 돌밭 위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을 때 즉시 기쁨으로 그것(말씀)을 받아들였지만, (17) 그들 안에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잠시 동안만 존재한다. 그리고 난 후에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즉시 걸려 넘어진다. (18) 또 다른 이들은 가시덤불 속으로 뿌려진 자들이니, 그들은 말씀을 들었으나, (19) 세상의 걱정들과 재물의 유혹과 다른 것들에 관한 욕심이 들어와서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좋은 땅에 뿌려진 것들이란 그들이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씨는 ‘로고스’(logos: word)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gospel)을 상징하고 있고(막 1:45), 씨가 떨어지는 장소는 말씀을 들었을 때 반응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밭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에서는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이 단수로 표현되었지만, 예수님께서 비유를 설명하시는 내용에서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모두 복수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의 밭의 특징과 문제점을 생각해 보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조건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땅이 단단하여서 땅 속에 들어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사탄’(Satan)으로 해석되는 새에 의해서 ‘로고스’로서의 복음을 빼앗기게 됩니다(막 4:15). 복음의 씨앗이 길가와 같은 마음의 밭에 떨어져 사탄에게 복음을 빼앗긴 이유를 생각해 보면 마음의 완악함(the hardness of heart)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떨어졌을 때 복음의 씨앗은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막 3:5). 또한 마음의 완악함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인정하지 않는 죄와 연결되어 있으므로(막 3:29), 복음의 씨앗이 열매를 맺는데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두 번째 흙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돌밭 위에 떨어진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유는 환난((thlipsis: tribulation)과 박해(diogmos: persecution) 때문입니다(막 4:17).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돌밭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떨어졌을 때 그들은 즉시(immediately) 복음을 기쁨(chara: joy)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환난과 박해가 다가왔을 때 복음의 뿌리가 깊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환난과 박해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세 번째 가시덤불 위에 떨어진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유는 말씀을 들었지만 세상의 걱정(merimna: anxiety)과 재물의 유혹(apate: deception)과 다른 것들에 관한 욕심(epithymia: desire)이 복음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막 4:18-19). 이 세가지 요소들이 복음의 가시가 되었을 때 복음을 들은 자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미혹에 빠져 넘어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막 4:20).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세 단계를 거쳐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말씀을 듣는(akouo: to hear)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말씀을 받아들이는(paradechomai: to accept) 단계이고, 세 번째 단계는 열매를 맺는(karpophoreo: to bear fruit) 단계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의 상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좋은’(kalos: good)이라는 형용사는 어떠한 목적에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면, 누가복음 14:3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소금이 좋다는 것은 소금의 짠맛을 잃어버리지 않아서 식품의 부패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좋은 땅이란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서 세상의 환난이나 박해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세상의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여러가지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열매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입니다. 고대 근동의 사회에서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여서 일반적으로 다섯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열매의 결실은 숫자적 개념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으로 수확할 수 없는 양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좋은 땅의 결실의 열매를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기록하고 있고(마 13:8), 누가복음에서는 백 배의 열매만 언급되었습니다(눅 8:8).

이러한 열매는 자신의 의견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였을 때 허락해 주시는 열매의 기준과 동일합니다. 이삭이 극심한 흉년이 경험했을 때 자신의 뜻대로 애굽에 내려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랄(Gerar) 땅에 거주하였고,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셔서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백 배의 수확을 얻게 되었습니다(창 26:12).

복음의 씨앗이 우리의 마음 밭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여서 그리스도를 향한 신실함(faithfulness)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기>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씨 뿌리는 자의 땅의 비유는 씨를 뿌리는 농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비유를 생각할 때 씨와 밭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1. 길가에 떨어진 씨앗을 마음의 완악함으로 해석한다면 길가는 어떠한 마음의 상태를 나타냅니까? 우리는 마음의 완악함으로 인해 복음을 빼앗길뻔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돌밭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환난과 박해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환난과 박해에 걸려 넘어진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까?
  1. 복음의 씨앗이 가시덤불에 떨어졌을 때 가시덤불은 세상의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여러가지 욕심을 상징합니다. 우리에게 복음의 씨앗이 떨어졌을 때 가장 큰 위험이 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1.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기 위한 가장 좋은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열매를 맺기 위한 가장 좋은 상태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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