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The ChristianTimes

[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깨닫는 종말의 시간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깨닫는 종말의 시간

마가복음 13장 28-31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종말론과 관련된 담화의 결론의 전반부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막 13:14)이 예루살렘 성전에 서는 것과 관련된 종말의 메시지가 1세기 역사적 사건을 통해 실현되고, 미래의 우주적 종말(막 13:24-27)과 연결될 때 인자(the Son of Man)가 문 앞에 가까이 와 있음을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막 13: 28) 그리고 무화과나무로부터 그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이미 연해지고 잎들이 나올 때면, 여름이 가까이 온 것을 너희들이 안다. (29) 이와 같이, 너희들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인자)가 문 가까이 있는 것을 알아라. (Translated by YG Kim)

팔레스타인 지대의 대부분 수목인 올리브 나무는 상록수인 반면, 무화과나무는 겨울에 잎이 떨어지고 늦은 봄인 3-4월경에 새 잎을 피우는 대표적인 낙엽수입니다. 따라서 무화과나무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아나는 것은 수확의 계절인 여름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음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매우 명확한 자연적 현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8절과 29절에서 자연적 징조와 지식을 통해 종말론적 징조와 결단을 촉구하시는 정교한 대칭 구조(Symmetrical structure)로 말씀하십니다.

28절 (자연적 징조와 지식)

[A] 징조: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는 것을 바라봄

[B] 지식: 여름이 가까운 줄 알아라[직설법]

29절 (종말론적 징조와 결단)

[A´] 징조: 너희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봄

[B´] 결단: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 알라[명령법]

이러한 대칭 구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피어나는 자연 현상을 통해 추수의 계절인 여름이 가까웠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지식의 출발점으로 정하십니다. 이러한 출발점은 자연스럽게 인자의 재림과 관련된 우주적 종말론과 연결되어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인자의 오심과 구원의 완성이 바로 문 앞에 가까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특별히 헬라어 문법을 조금 적용해 보면, 마가복음 13장 28-29절의 대칭 구조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적인 현상을 깨닫는 과정을 실재(reality)와 사실(fact)로 설명하는 직설법(indicative)을 사용하시고(ginoskete: 2nd person, plural. present, active, indicative), 종말의 시간에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왔음을 표현할 때에는 결단을 요구하는 명령법(imperative)을 사용하십니다(ginoskete: 2nd person, plural. present, active, imperative). (‘알다’라는 동사 ‘ginosko’의 2인칭 복수, 현재형 능동태는 직설법과 명령법의 형태가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연 질서의 확실성을 보여주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인자의 재림이 반드시 성취될 필연적이고 확실한 구속사적 사건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에게는 종말의 시간에 거짓 메시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표적과 기사들(13:22), 그리고 가족과 세상의 박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는 참된 제자도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강조해서 우주적 종말론을 말씀하십니다.

(막 13: 30) 내가 진실로 너희들에게 말한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까지 이 세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1) 하늘과 땅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모든 일들”(막 13:30)은 단순히 AD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만을 의미하지 않고, 24-27절에 기록되어 있는 인자의 재림으로 표현된 우주적 종말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세대”는 예수님 당시의 1세기 청중들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역사의 마지막을 경험하는 모든 세대를 포함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피조세계의 한계성을 언급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 말씀의 영원성을 강조하십니다(막 13:31). 구약성경에서 ‘하늘과 땅’의·유한적 성격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그리고 구원의 불변성과 대조되어 기록되었습니다(시 102:25-27, 사 40:6-8, 51:6).

(시 102:25) 옛적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세우셨고 주님의 손이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26) 그들은 망할지라도 주께서는 여전히 계시며, 그들은 다 옷같이 낡겠고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겠으나, (27) 주께서는 한결같으시고 주님의 연대는 끝이 없습니다. (바른 성경)

(사 51:6) 너희는 너희 눈을 하늘로 들며, 그 아래 땅을 살펴보아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와같이 죽을 것이나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바른 성경)

이러한 예수님의 선언은 전통적인 유대교에서 강조하는 오직 토라(Torah)로서 모세 율법만이 영원히 폐하지 않는 신적 권위를 가졌다는 말씀과도 대조를 이룹니다(시 119:160, Baruch 4:1, 4 Ezra 9:36-37). 마태복음 5장 18절과 누가복음 16장 17절에서도 율법이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까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전통적 명제와도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3장 3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교가 율법에 부여했던 영원성의 자리에 예수님 ‘자신의 말씀’(hoi de logoi mou)을 올려놓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보다 유대교의 율법이 영원하다는 전통적 명제를 한 단계 더 뛰어넘어서,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선포하십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로서 인자(the Son of Man)가 선지자나 율법의 차원을 초월하는 신적 권위와 지위를 지니고 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인자의 초월적 신적 권위와 지위에도 불구하고, 인자로서 예수님께서는 우주적 종말론으로써 재림(Parousia)의 날짜와 시간을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러한 선언은 종말의 시간에 관한 징조들은 역사 속에서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지만, 재림의 구체적인 그 날짜와 그 시간은 인간의 계산과 영적 영역 밖에 있으며 심지어 인자로서 예수님 자신도 알지 못하신다는 선언입니다.

(막 13: 32) 그리고 그 날이나 그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알지 못한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께서 종말의 날짜와 때를 알지 못하신다는 이 선언은 초기 교회와 복음서 저자들에게 커다란 신학적 당혹감을 주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6절에는 인자도 우주적 종말론의 날짜와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마태복음 필사본(Matthean parallel)에는 “아들도”(oude ho huios: nor the Son)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생략했습니다(e.g., Byzantine Text / Majority Text / Textus Receptus).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서 가진 신성을 강조하던 초기 정통파 교회와 필사자들에게 커다란 신학적 당혹감(Theological embarrassment)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서도 이러한 신학적 성향(Theological tendency)이 나타나는데, 누가는 자신의 신학적 강조점에 따라서 종말의 날짜와 시간을 알지 못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누가복음 21장 29-33절의 내용에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고, 사도행전 1장 7절에서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였다. [역사적 시간 속에서] 때(chronos)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kairos)을 아는 것은 너희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들이다”(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점층적 계층 구조(Climactic hierarchy)를 통하여 종말론적 재림의 시간을 알지 못하는 주체의 범위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oudeis: no one)로 시작해서, 하늘의 천사들(hoi angeloi: the angels), 그리고 아들(ho huios: the Son)로 확장해 갑니다. 이러한 점층적 계층 구조에서 ‘아버지’(pater: the Father)를 마지막에 배치하고 “~을 제외한” 이라는 조건 접속사 “ei me: except”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최종 권한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최종 시각을 결정하고 역사를 완성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적인 구속사적 주권에 속해 있음을 확증하셨습니다. 신적 권위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 종말의 시각에 관해 알지 못한다는 고백은 이 땅에서의 지상 사역 동안 피조물로서 성육신(Incarnation)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True Humanity)과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종말론적 완성의 최종 권한에 관한 진실된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종말의 시기나 재림의 구체적인 날짜를 함부로 계산하려는 인간의 영적 교만과 추측을 엄격히 차단하십니다. 오히려 우주적 종말의 시간을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은 신앙의 나태함에 빠지기 쉬운 성도들로 하여금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영적인 깨우침을 줍니다.

마가복음 13장 28-32절에 기록되어 있는 종말론적 긴장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한 확실성과 결단을 촉구합니다. 역사의 확실성은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긴장감을 촉발하는 근거이며, 우주적 종말의 시간에 관한 불확실성은 불안이 아니라 매 순간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긴장감을 허락해 줍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고유 권한인 종말의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의 참된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늘과 땅이 없어질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매 순간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진정한 제자도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함께 나누기>

  1. 마가복음 13장 28-29절의 대칭 구조를 설명해 보십시오. 이러한 대칭 구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28절에서 ‘알다’라는 동사를 직설법으로 표현하시고, 29절에서 ‘알다’라는 동사를 명령법으로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마가복음 13장 30절에서 “이 모든 일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또한 “이 세대”는 단순히 1세기 청중들만 의미합니까? 아니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1. 예수님의 말씀이 하늘과 땅이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 종말의 날과 시간을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선언이 공관복음서에서 어떻게 적용되었습니까? 마태복음의 필사본에서 인자로서 하나님의 아들도 종말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에서는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1. 마가복음 13장 32절에 기록된 점층적 계층 구조를 설명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속사적 주권은 무엇입니까?
  2. 마가복음 13장 32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교회)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