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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의 교육명령] 제2회 믿음의 귀환, ‘신들린 연애’와 모이는 교회의 나침반

제2회 믿음의 귀환, ‘신들린 연애’와 모이는 교회의 나침반

  요즘 영성은 종종 세로로 깊어지기보다 가로로 넓어진다. 영성은 더 이상 고요한 골방의 언어가 아니라, 스크롤의 속도에 맞춰 배달되는 감정의 택배가 된다. 그 장면을 한국의 한 예능이 또렷하게 보여 준다. SBS의 〈신들린 연애〉가 그러하다.

  늘 남의 연애운을 보던 점술가들이, 자기 연애운 앞에서 흔들리는 이야기이다. 무당과 사주, 타로가 한 화면에 놓이고, “운명”이라는 단어가 자막처럼 따라다닌다. 예전 같으면 뒷골목의 미신으로 치부되던 세계가 이제는 스튜디오 조명 아래, 메인 스트리트의 예능 문법으로 번역된다. 그것도 ‘무섭다’는 표정이 아니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소비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의 선악 판단이 아니다. 영성은 팔리고, 브랜드가 생기고, ‘나만의 의식’이 취향처럼 조립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은 확신을 사고 싶어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시대에,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문장을 누가 단정적으로 말해 주면 마음이 잠깐 눕는다. 인간의 불안은 늘 그렇듯, 이유를 설명받기보다 결론을 먼저 받고 싶어 한다.

  그러니 교회의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왜 그런 걸 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렇게 불안하냐”가 되어야 한다. 많은 경우 교회의 첫 반응은 단호함이다. “보지 마라.” “하지 마라.” 그러나 다음 세대는 금지문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금지는 잠시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방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지금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단속이 아니라 나침반을 건네는 일이다. 

믿음의 귀환을 위한 나침반 두 가지

  첫째, 우리의 갈급함이 어떤 방향을 향하도록 설계되었는지이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의지할 곳’을 찾는다. 그 본능 자체를 죄악처럼 몰아붙이면, 갈급함은 더 은밀한 곳으로 숨어 들어간다. 교회는 그 갈급함을 “거룩한 갈급함”으로 다시 이름 붙이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잡아 주어야 한다.

  둘째, 그 갈급함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때 어떤 상처가 생기는지이다. 혼합 영성이 위험한 이유는 정보가 틀려서만이 아니라, 고립된 개인에게 개인 맞춤형 구원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반면 복음은 개인을 구원하여 공동체로 데려온다. 복음의 위로는 “혼자서 해결하라”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자”이다.

  믿음의 귀환은 더 많은 정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교회가 세워야 할 것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안전한 관계의 자리다. 교회가 가정에 줄 가장 큰 선물은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함께 나눌 대화의 언어다. 그래서 신명기 6장의 네 때, 집과 길과 잠자리와 아침의 순간마다 부모의 입에 얹힌 한 문장이 믿음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939주와 미래교회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는 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부모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939주라고.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날 때까지의 시간, 약 18년. 계산해 보면 1년이 52주이니,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대략 939번의 주일로 접혀 있다.

  그래서 어떤 교육학자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939주는 한 사람을 세우는 시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939주는 양육이 쌓이는 시간이다.

  한 주는 짧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러나 그 한 주 안에는 작은 장면들이 남는다. 식탁에서 나눈 대화, 잠자리에서 들려준 기도, 차 안에서 흘러나온 질문, 부모의 표정 하나. 그렇게 한 주가 지나갈 때마다 한 문장이 쓰인다. 그 문장들이 939개가 모이면, 어느새 한 사람의 이야기, 한 사람의 영혼의 방향이 만들어진다.

  939주라는 개념은 단순한 가정교육의 비유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 교회의 방향을 보여주는 작은 지도에 가깝다. 앞으로의 교회는 더 많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삶 속에 더 깊이 들어가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와 다음세대의 신앙은 대부분 주일 한 시간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939주의 일상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미래교회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흐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는 점점 건물 중심에서 생활 중심으로, 행사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프로그램 중심에서 일상의 반복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939주는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가정을 신앙의 첫 공간으로 회복하고 있는가? 2.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을 세워가고 있는가? 3. 주일 1시간에서 주중 167시간 신앙으로 확장하고 있는가?

  그래서 미래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시간을 함께 살아주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의 이름이 939주, 모이는 교회의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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