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벨이 가르쳐 준 D6 일상
전도서를 펼치면 첫 문장부터 마음이 무거워진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 여기서 “헛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가 헤벨, הֶבֶל이다. 헤벨은 허무라는 뜻만 가진 말이 아니다. 입김, 안개, 수증기처럼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 손에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겨울 아침에 입김을 불어 본 적이 있다. 분명 눈앞에 있다. 그런데 손을 내밀어 잡으려 하면 사라진다. 전도자는 인생이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건강도, 젊음도, 성공도,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도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전도서의 놀라운 반전이 시작된다.
사라지는 날들, 이어지는 일상의 믿음
인생이 헤벨이니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 헤벨이니 오늘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헤벨을 알면 평범한 하루가 달라진다(전 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며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놀랍다. 전도자가 말하는 행복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먹는 것이다. 마시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다. 그 수고 가운데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 행복을 먼 곳에 놓는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할 텐데.” “아이 대학 보내고 나면.” “조금 더 안정되면.” “은퇴하고 나면.” 그렇게 행복은 계속 내일로 밀려난다. 그러나 전도자는 우리를 오늘로 데려온다.
오늘 먹는 밥, 오늘 함께 있는 사람, 오늘 할 수 있는 일, 오늘 나눌 수 있는 대화.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헤벨을 알게 되면 대단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평범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평범하기 때문에 우리가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부모에게 자녀의 시간도 헤벨이다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안다. 아이의 시간은 이상할 만큼 빨리 간다. 어제까지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어느 날 학교에 간다. 어제까지 자동차 뒷자리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던 아이가 어느 날 이어폰을 낀다. 어제까지 잠자기 전에 “엄마, 아빠 옆에 있어 줘” 하던 아이가 어느 날 자기 방 문을 닫는다.
그때 부모는 뒤늦게 깨닫는다. 그 시간이 헤벨이었다. 있었지만 붙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그 귀한 시간을 미래를 준비시키느라 보낸다.
성적을 준비시키고, 대학을 준비시키고, 직업을 준비시키고, 성공을 준비시킨다.
미래를 준비시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미래를 준비시키느라 오늘의 아이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아이의 어린 시절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939주의 헤벨
한 아이가 태어나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대략 939주이다. 939주라고 하면 길어 보인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면 938주가 된다. 또 한 주가 지나면 937주가 된다. 시간은 저축되지 않는다. 사용하지 않은 한 주를 다음 해에 되돌려 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939주는 숫자가 아니다. 939번의 월요일이고, 939번의 금요일이고, 939번의 주일이며, 수천 번의 아침과 저녁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특별한 날이 아니다. 평범한 날이다.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 저녁을 먹는 식탁, 교회에 가는 자동차 안, 잠들기 직전의 몇 분. 우리는 이런 시간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명기 6장 7절에서 하나님은 바로 그런 시간을 가리키신다. 헤벨을 아는 부모는 오늘을 미루지 않는다. 시간은 지나가지만, 오늘 심은 믿음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하나님은 거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앉을 때. 길을 갈 때. 누울 때. 일어날 때. 일상의 네 때이다. 하나님은 신앙을 특별한 시간에만 가르치라고 하지 않으셨다. 삶이 지나가는 바로 그곳에서 믿음을 전수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D6는 일상을 붙든다. D6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프로그램 하나를 더 만드는 일이 아니다. 가정에 또 하나의 숙제를 주는 것도 아니다. D6가 붙드는 것은 일상이다.
헤벨은 우리에게 “더 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헤벨의 메시지를 듣고 부모가 또 부담을 느끼면 안 된다. “이제 가정예배도 더 잘해야겠다.” “성경공부도 더 해야겠다.” “아이에게 더 많이 가르쳐야겠다.”
전도서의 지혜는 오히려 반대 방향이다. 더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헤벨은 사랑을 미루지 말라고 한다. 전도서 9장 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놀라운 표현이다. “헛된 날”과 “즐겁게 살라”가 한 문장에 함께 있다.
왜 그런가? 헤벨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사랑하는 것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집을 떠난다. 언젠가 식탁의 빈자리가 생긴다. 그러므로 오늘 아이가 말을 걸어올 때 들어 주어야 한다. 오늘 안아 달라고 할 때 안아 주어야 한다. 오늘 질문할 때 함께 생각해 주어야 한다. 오늘 축복할 수 있을 때 축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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