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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믿음 (2), “관계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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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2), “관계 증명”

페르시아의 젊은 왕자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네를 공략하기 위해 나라의 모든 병력을 모아 전열을 재정비합니다. 그는 제 3차 헬라 원정을 위해 아미스트레스, 아르타프레네스, 메가바테스, 그리고 아스타스페스를 원수들로 세웁니다. 그들은 궁술과 승마술에 능숙한 거대한 군대의 최고 지휘관들입니다. 또한 전차에서 싸우는 아르템바레스, 활을 잘 다루는 귀족출신의 마시스트레스,  또 귀마병인 파란다케스도와 소스타네스도 지휘관에 포함시킵니다. 그 외에도 전략이 풍부하고 강력한 힘을 지닌 이집트 나일 출신인 수시스칸스와 페가스타곤, 신성하고 강인한 멤피스의 군주인 아르사메스, 테베의 총독인 아리오마르두스, 그리고 습지에 사는 노젓는 사람들이 그 원정에 합류합니다. 그들 모두는 전쟁에 능숙하고 숙련된 군인들입니다. 수를 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혼이 굳은 결의로 가득찬 그들의 용맹스런 자태만 바라보는 것도 두려운 일입니다. 그가 전장을 향해 용감하게 진격을 명령할 수 있었던 원인은 지휘관들을 신뢰했고, 자기 군의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저서『페르시아인들』에서 아이스킬로스는 군대의 힘이나 전술을 의심 없이 신뢰하는 마음의 태도를 “피스토스”라 했습니다. 믿음으로 번역되는 이 낱말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계약이 체결된 상태에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사용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업하는 파트너, 절친, 남편, 아내, 증인, 천사, 수호자, 노예 등과 같은 존재 앞에 수식어로 “피스토스”를 붙여 불렀습니다. 이 낱말은 인간과 그의 행동에만 사용되었습니다. 대신 사물의 변치않고 확실한 상태를 표현할 때는 “베바이오스,” 즉 “불변성”이라 불렀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피스토스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낱말이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초기 교회가 전수 받은 구약과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믿음”은 한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자신들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을 “믿음”을 통해서 전수했습니다. 믿음은 그것을 선포하는 자들이 듣는 자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했던 도구였습니다. 그러므로 초기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일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태도는 구약에서부터 전수된 믿음의 진수 (眞髓)인 것입니다.   

   첫째, 믿음은 성경과 관계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믿음은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요2:22),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된 것 (행전 24:14),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 (눅 24:25), 그리고 모세와 그의 글 (요5:46 이하)에 담겨진 내용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모든 성경은 곧 예수님에 관한 내용이며 (요 5:39),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성경과 자신의 연관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둘째, 믿음은 순종과 관계됩니다. “믿는다”는 것은 곧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원리를 구약의 인물들의 삶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소위 믿음의 영웅들은 순종을 통해 자신들의 하나님 신뢰하는 믿음을 증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에서 순종의 요소를 강조합니다. 그에게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자랄 수록 신앙 생활의 활동 범위가 더 확장된다는 것을 언급합니다. 야고보는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예로 듭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행함은 곧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 믿음은 신뢰와 관계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신뢰는 언제나 믿음과 연결됩니다. 구약을 배경으로 하는 유대교에서도 “믿음”은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마카비의 글에는 “아브라함은 시련 가운데에서 믿음을 지켜 그것이 그의 의로움으로 인정받지 않았느냐?”고, 그의 믿음은 곧 그의 하나님 신뢰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동일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조상들이 순종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증거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고, 그녀의 믿음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한 것이었습니다. 

   넷째, 믿음은 희망과 관계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희망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무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전혀 바랄 수 없는 중에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랐습니다.자신이 백 세나 되어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몸이 죽은 것같고 아내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한 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도 역시 믿음은 곧 희망인 원리를 조상들의 신앙을 예로 설명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프스토스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라면, 그 믿음은 언제나 희망으로 유지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 희망은 확실히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믿음은 충성과 관계됩니다. 신뢰와 희망의 믿음은 충성과 순종을 불러 일으킵니다. 믿음에 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  고 희망의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의 삶의 자세를 이렇게 언급합니다.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그러므로 우리도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갑시다”라고, 믿음을 인내가 요구되는 경주로 비유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은 본질적으로 신실함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을 강조합니다. “너희 각 사람이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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