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 “은혜의 빚 The Debt of Grace”
카리스마의 본질과 한국 교회의 오해를 넘어서
현대 사회에서 “카리스마”는 대중을 압도하는 정치가의 매력이나, 청중을 사로잡는 설교자의 강력한 흡인력을 뜻하는 말로 흔히 통용됩니다. 종교적 맥락에서도 이 단어는 흔히 성령의 강력한 나타남이나 초자연적인 능력을 소유한 개인을 연상시키며, 때로는 신앙적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도구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 은사 spiritual gift”로 번역되는 카리스마의 근본적인 의미는 세간의 인식과 커다란 간극이 있습니다.
“카리스마”의 희랍어 어근은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입니다. 카리스마는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에 행동의 구체적인 결과를 나타내는 접미어 “-마”를 붙인 단어입니다. 은혜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 단어는 “호의 받은 증거,” “특별히 받은 혜택,” 그리고 카리스와 같은 “받은 선물”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는 한 개인의 영적 선함이나 탁월함 혹은 훈련의 대가로 획득하는 성취물이 아니라, 인간의 공로와 상관 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주시는 은총임을 내포합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과 인간 관계 사이에서 사용되는 전문어로 일반 사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혜택이나 호의의 표시로 주는 선물을 가리킬 때 간혹 이 단어가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역본인 70인역에서도 이 단어는 “자비”라는 의미로 극히 드물게 나타납니다.
이처럼 일반사회에서 거의 통용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밀접한 연결을 갖는 카리스마는, 신약성경의 핵심 용어로 가장 빈번히 사용됩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글에 이 단어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바울 서신에 나타난 카리스마의 용례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카리스마는 성도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많은 영적인 특권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 백성으로 부르시고,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주님을 거부했을지라도 그들에게 베푸신 영적 특권과 은사는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적 특권 자체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카리스마”인 것입니다.
둘째, 카리스마는 생명의 보존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극심한 고난과 죽음의 위험에서 건짐을 받은 사건을 성도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가 어우러진 “은사”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이는 자신의 지혜나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손길만이 생명을 보존한다는 고백입니다.
셋째, 카리스마는 한 개인이 죄의 용서와 함께 얻게 되는 영원한 구원입니다. 바울은 은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는 은사의 출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거듭 언급합니다.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죄의 비참한 대가는 사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주어지는 은사는 구원이며 영생입니다.
넷째, 카리스마는 영적인 은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영적 은사”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여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으며, 이러한 은사들이 교회를 견고하게 하는 데 필수적임을 역설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여러 은사를 언급하며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조언합니다. 이어지는 13장에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밝히며, 은사의 가치는 오직 사랑 위에서만 발현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14장에서는 그 은사들이 궁극적으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사용될 것을 명령합니다. “이 모든 것을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의 구성원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영적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은사에 관해서 밝힌 바울은 이 원칙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이 모든 은사의 유일한 근원은 성령이시며, 은사를 주신 목적은 개인의 영적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교회의 유익과 세움”을 위함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소외되거나 중요하지 않은 은사는 없습니다. 성도들은 서로 다른 은사를 통해 유기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한 이유는, 은사가 탐욕적 욕망이 아닌 인간의 신실한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베푸심에 있음을 시사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목회 사역을 출발하는 젊은 디모데에게 은사를 방치하지 말고 더욱 불일듯하게 발전시키라고 강력히 권면합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영적 은사는 철저히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위탁하신 기능입니다. 나의 공로나 자격으로 얻은 것처럼 자랑하거나 사유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은사는 나를 낮추고 이웃을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은혜의 빚 The Debt of Grace”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도 개인의 고유한 은사 발견과 상호 존중과 협력하는 “카리스마적 공동체”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남규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