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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공의 (Justice), “하나님의 사법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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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Tara Winstead on Pexels.com

공의 (Justice), “하나님의 사법 활동”

“부당하게 빼앗겼던 토지의 경계석을 뽑아내어 대지를 자유롭게 하고,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간 아테네 시민들을 다시 고국으로 불러와 정당한 권리와 재산을 되찾아 준 행위야말로 신의 공의를 지상에 실현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고대 아테네의 입법자 솔론은 현실 정치와 사법적 행위를 통해 빚 때문에 노예로 팔려가거나 땅을 빼앗긴 시민들의 권리와 재산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해방과 회복”을 공의라고 규정했습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는 인간의 짓밟힌 권리를 보호하고 각 사람에게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회복시켜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자연의 법, 즉 하나님의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의의 첫 번째 임무는 누구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두 번째 임무는 공공의 것과 사유재산을 각자에게 정당하게 돌려 주어 사회의 권리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한쪽은 부당하게 이득을 보고, 다른 쪽은 손해를 입어 균형과 질서가 깨진 상태를 불의 (injustice)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재판관이 잘못한 자를 처벌하는 차원이 아니라, 강탈당하거나 억울하게 손실을 입은 사람에게 원래의 몫을 다시 돌려 주어 (restitution) 산술적 평등과 무너진 균형을 정상 상태로 복원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공의라고 설명했습니다. 

   성경에서 공의로 번역되는 고대 희랍어 “크리시스”는 단순히 죄를 묻는 소극적 법집행이 아니라 손상된 삶과 건강 그리고 잃었던 재산과 권리를 정당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적극적인 회복의 행위를 의미했습니다.  크리시스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무너진 질서를 바른 상태로 되돌려 놓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조치였습니다. 억울하게 잃어버린 백성들의 재산을 정상으로 돌려 놓고, 짓밟힌 인간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행위를 미쉬파트로 표현합니다. 병든 육체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행위도 미쉬파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자기들 스스로는 해방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공의를 세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키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신상 앞에 기도하지 않고 대신 하나님께 하루 세 번씩 기도한다고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이 구출된 것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려 나라를 구한 소년 다윗이 사울 왕의 시샘으로 들로 산으로 광야로 도망자의 생활을 합니다. 그의 잃은 권리를 회복시키시는 행위는 하나님의 본능적 성품입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을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라고 표현합니다. 

   희랍어 구약 성경인 70인 역은 히브리어 미쉬파트를 하나님의 회복의 행위를 뜻하는 크리시스로 번역합니다. 원수들의 박해로 극심한 삶의 위기와 시련 속에서 구원된 한 피해자는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을 전하겠나이다.” 고대 열강의 압제와 폭력에 처절하게 짓밟혔던 이스라엘이 해방된 원인을 한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시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공의를 세우시는 주체는 지상의 인간 왕이나 제국의 권력이 아닌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온 세상을 정의롭게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학 및 사상 체계에 깊게 스며들었습니다. 그들에게 공의, 즉 크리시스란 인간 세상의 권리와 관습을 수호하는 신들의 사법적 활동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인간이 사회적 규칙과 천륜을 어기면, 신들이 반드시 개입하여 당사자나 그 후손에게 응분의 벌(심판)을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플라톤은 현세에서 법망을 빠져나가 권력을 누린 악인이라 할지라도, 사후 세계에서 신들의 엄중한 사법적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단언합니다.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도 비극 시를 통해 사후 세계에 존재하는 사법적 공의를 강렬하게 노래했습니다. “지하 세계의 재판관 디스(지옥의 왕) 앞에서는 이 세상의 왕관도, 권력도 소용없다. 지상에서 행한 모든 악행은 저승의 판결대 위에서 그대로 되돌려받게 되며, 악인은 자신이 지은 죄에 정확히 비례하는 형벌을 선고받는다.”

    신약 성경에150회나 언급되는 크리시스는 개인의 무너진 권리 회복과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로 사용됩니다. 성경의 어느 한 구석도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와 궤를 같이합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선포하며 하나님이 친히 집행하실 심판이 임박했음을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공생애 사역 내내 심판의 현실을 강조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앞에서의 엄중한 심판을 일깨우는 경고로 가득 차 있으며, 알곡과 가라지, 그물 비유 등 천국 비유들 또한 하나님이 마침내 임할 판결을 똑똑히 보여줍니다. 주님은 완악한 바리새인들의 죄악을 지적하시며 오는 세상에서의 심판을 선언하셨고, 복음을 거부한 가버나움과 고라신을 향해 소돔과 고모라, 두로와 시돈이 받을 심판보다 더 엄중할 것임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이 심판의 메시지는 사도들에게도 변함없이 이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자에게 임한다고 선언하며, 그리스도인들조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신의 행위에 따라 결산하게 될 것임을 일깨웠습니다. 사도 요한은 구원의 은혜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유일한 길임을 전하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그리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는 보편적 심판의 원칙을 명시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공평무사하게 심판하시는 판관이심을 강조하였으며, 성도들이 경건함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복음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자들에게 장차 임할 심판을 상기시키며,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엄숙한 인류의 명제를 선언합니다. 마침내 요한계시록에 이르러 “큰 백보좌 심판”으로 악의 권세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성취되는 역사가 완성됩니다.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은 교회들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악인에게는 극심한 공포와 경고가 되지만, 억울하게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비할 데 없는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억압받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모든 잘못을 바로잡아 주실 거룩한 판관이 계신다는 사실은 참담한 현장을 지키는 모든 사역자들에게 견고한 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 날마다 자신을 정직하게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이 전혀 두려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스스로의 삶을 돌이키는 경건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는 두려움이 아니요, 능력이며 희망이며 온전한 평강과 구원의 방패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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