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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제자, “스승의 생명을 복제하는 자”

제자, “스승의 생명을 복제하는 자”

고대 그리스의 군인이자 역사학자인 크세노폰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의 언행, 사상, 그리고 그와 나눴던 대화들을 회고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 (소크라테스)는 결코 자신이 그러한 스승 (교사)이라고 공언한 적이 없다. 다만 그 스스로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명백히 보여줌으로써, 그와 함께 지내는 “마데테스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아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만들었을 뿐이다.” 제자란 삶을 대하는 스승의 인격과 품성을 자신의 삶에 복제하는 자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가장 존경받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의 제자가 되고 싶은 자기 친구 히포크라테스를 프로타고라스에게 데려가서 묻습니다. “제 친구가 당신을 따르면 그 결과로 자신에게 어떤 유익이 생길지 듣고 싶어합니다.” 프로타고라스는 히포크라테스를 보며 “청년이여, 나와 함께 지내게 되면, 당신이 나와 함께하는 바로 그 첫날부터 집으로 돌아갈 때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고, 그 다음 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매일매일 더욱 나아지게 될 것이오”라고 대답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시 묻습니다. “나의 친구가 당신의 마데테스 (수강생 혹은 제자)가 되어 날마다 당신과 함께 지낸다면, 정확히 어느 분야에서 그리고 어떤 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까?” 프로타고라스는 “나와 함께 하면 개인의 가정생활을 가장 잘 관리하는 지혜와, 국가의 공적인 일에서 말과 행동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훌륭한 시민의 덕을 배우게 될 것이오”라고 답합니다. 마데테스 (제자)는 기술이나 지식의 파편을 전수받는 자가 아닌, 스승 곁에서 그의 삶의 양식 전체를 흡수하여 자신의 삶을 개조하는 배움의 주체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마데테스들은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들의 가르침을 정밀하게  보존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스승들은 글을 남기지 않거나 적은 기록만을 남겼으나, 마데테스들, 즉 제자들은 스승의 사상과 인생관을 후대에 전하는 살아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수강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스승과 함께 하며, 스승의 호흡을 느끼고, 스승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 영감을 얻으며, 마침내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가르침과 삶을 온 세상에 지속시켜 나가는 생생한 통로였습니다.

   신약 성경에 “제자”로 번역되는 헬라어는 위에 언급한 “마데테스”로,  교실 안에서 기술과 지식을 배우는 자가 아닌 일상의 삶에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전수받는 사람을 뜻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는 오늘날 수학을 뜻하는 영어 “메스매틱스”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수학이 명확한 원리와 논리의 깊은 속을 탐구하고 배워나가는 학문이듯, 제자는 스승의 내면 세계에서 표출되는 삶의 원리를 배우고 익혀서 계승하는 자였습니다. 제자도 (discipleship)는 스승과 제자가 끊임없이 삶을 공유하며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던 사람들의 삶에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통칭하여 “열두 제자”로 불렸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늘 함께 지냈기에 이동 중에 들판에서 이삭을 자라 먹으며 식사를 해결해야 할 때도 있었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늘 뒤따랐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때때로 특정 인물과의 끊임없는 삶의 동행보다는 “율법의 규칙”과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는 데 주력하는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대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뽑으실 때,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시며, 스승 곁에서 스승과 함께 먹고 자며 그의 인격과 삶의 방식을 흡수하는 이들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세계를 전수받는 과정에서 제자들은 완벽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거듭된 실패를 반복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유를 항상 즉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고 꾸짖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시며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신성한 능력을 지속적으로 봐왔지만, 들판에 흩어져 있는 배고픈 무리들을 위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의 능력을 온전히 깨닫지 못해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역할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였고, 자신들이 부여받은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주님의 지상 사역을 이어갈 자들로 선택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그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복음을 전파하며, 자신처럼 제자를 양성하라는 대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초기 교회 성도들은 집합적으로 “제자들”이라 불렸습니다. 오순절 이후 제자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교회의 구제 사역에 부담이 생기기도 했으며, 회심한 다소의 사울 (바울) 역시 제자들의 공동체에 영입되었습니다. 안디옥에 이르러 제자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고, 제자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드러내는 자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전반에 걸쳐 “제자”라는 용어는 특정 시대의 소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교회의 모든 성도를 포괄하는 의미로 자리잡았습니다.

   제자도(discipleship)의 가치는 시대를 뛰어넘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정의하는 기준입니다. 제자란 단순히 스승의 지식을 머리로 외우는 수동적 지식인이 아닙니다. 제자란 스승과 함께 먹고 마시며 삶을 공유하고, 스승의 가르침과 인격을 내 삶 속에 깊이 받아들여 스승을 닮은 “또 하나의 생명”으로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스는 예수님의 제자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자도는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제자도는 스승이 아는 것을 단순히 알게 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스승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에게 말을 건네거나, 그들을 얻거나, 그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곧 ‘복제본’을 만들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며 그분의 생명을 내 삶으로 온전히 복제해 내는 자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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