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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이단 (4), “영혼이 병든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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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ohn-Mark Smith on Pexels.com

이단 (4), “영혼이 병든 자들”

호메로스는 아카이아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군이 대규모 전면전에 돌입하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양측이 한곳에 모여 맞닥뜨리자, 방패와 창이 서로 부딪치고 청동 갑옷을 입은 전사들의 격렬한 기세가 폭발했다. 볼록한 방패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엄청난 굉음이 일어났다.  죽이는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의 신음 소리와 승리의 함성이 뒤섞여 들려왔고, 대지는 피로 흥건해졌다. 마치 겨울철 산속 거대한 샘에서 흘러내린 급류가 두 골짜기가 만나는 깊은 협곡에서 하나로 합쳐져 거센 물결을 이루고, 멀리 떨어진 산속의 목동이 그 우렁찬 소리를 듣게 되는 것과 같았다. 이처럼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서도 함성과 치열한 격전이 일어났다.” 그는 피로 물드는 살생과 광기만이 존재하는 전쟁터의 비극적 실상을 밝힌 것입니다.  

   놀랍게도, 초기 기독교의 변증가이며 교회사 학자였던 유세비우스는『복음의 준비』에서 교회 안에 들어와 논쟁과 말다툼만 일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면서 호메로스의 글을 다음과 같은 말로 인용합니다.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말싸움을 살펴보며, 다른 학파들 사이의 분열과 서로 대립하는 사상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그들은 마치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보여 주기라도 하듯, 권투 선수들처럼 서로를 공격하며 열정적으로 다투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이러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드러내 보이겠다.” 이들은 영혼을 구원하거나 성경의 진리를 세우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명예를 높이기 위해  상대방을  꺾고 공동체를 무너지게 하는 싸우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고대 희랍어로 “로고마키아”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는 “말”을 뜻하는 “로고스”와 “싸움”이라는 “마키아”의 합성어로, 말이라는 무기로 전쟁을 벌여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유세비우스는 이 단어가 사용되는 근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말로 싸우는 (전쟁과 같은) 논쟁이 매우 많다. 선에 관한 판단이 인간의 추측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높은 존재와 교제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지혜를 연마한 일은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로고마키아는 하나님과 관계 없는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한 추측을 절대진리로 고집하여 싸우는 자입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최고의 학자로 불렸던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Marcus T. Varro)는 자신의 저서 『로고마키아』에서  철학자들의 무익한 논쟁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최고 행복이 무엇인지를 놓고 서로 논쟁했던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모습을 “그들 사이에 무익한 말의 싸움이 있었다”라고 조롱했습니다. 에피쿠로스들은 쾌락을 최고의 선으로, 그리고 스토아들은 덕을 최고의 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리를 찾겠다는 그들의 열정은 어느새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상대방을 짓누르려는 경쟁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진리를 밝히기는커녕 말로 서로를 공격하는 논쟁만 거듭하며 사회와 국가에 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로고마키아”는 이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논쟁과 말다툼을 일삼는 병이 든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들은 “다른 교리를 가르치거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경건한 생활 원칙을 따르지 않고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합니다. 이 곳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로고마키아의 뿌리가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교만은 희랍어 “테튀포타이”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시야를 가리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판단에 도취되어 영적인 분별력을 잃은 상태를 묘사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사용한 말이 끼치는 영향력을 바울은 이렇게 열거합니다.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이들의 마음이 진리를 버리고 타락하고 오염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순히 다른 교리를 말하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는 상대방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비방하여 마음을 상하게 할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변하게 됩니다.    

   이처럼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로고마키아를 향한 바울의 대처 방식은 명확합니다. 에베소 교회를 이끌던 디모데에게 이단을 다루는 방식을 이렇게 조언합니다. “그대가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신도들에게 이것을 일깨우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들에게 엄숙히 명해서 말다툼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고, 듣는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성경의 진리와 복음을 떠나 자신들의 사상에 초점을 둔 이단들의 허탄한 가르침은 결국 개인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 멸망의 길로 이끌뿐입니다.   

   크레타 섬의 여러 성읍에 세워진 교회를 치리하던 디도에게도,  바울은 이단의 가르침을 철저히 경계하라고 엄중히 명했습니다. “어리석은 논쟁을 피하고 족보를 캐거나 말다툼을 하거나 율법을 가지고 싸우거나 하는 일을 멀리하시오. 이와 같은 일은 헛된 일이며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이단자는 한두 번 경고해 보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거든 그와 관계를 끊으시오. 그대도 알겠지만 이런 사람은 이미 타락하여 스스로 악한 줄 알면서도 계속 죄를 짓고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고 교회 공동체의 순수성을 보호하기 위해,  교회는 이단자를 향해 타협 없는 원칙과 단호한 태도를 견지해야합니다. 

   로마 교회에 편지하면서 바울은 이단에 관해 동일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이단자들의 관심은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배, 즉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거짓 선생들, 소위 이단들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 . .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 . .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초기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고 개인의 삶을 파멸로 이끌었던 이단들의 활동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신앙의 열매를 다시 살펴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만들며,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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