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이야기 13> 용서의 가치와 용서가 지닌 힘
지금까지 용서 및 용서하는 삶과 관련된 많은 내용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용서의 가치를 여러 면에서 비추어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용서가 지닌 힘에 대해 기술함으로써 용서에 관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먼저, 용서가 지닌 가치를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용서에는 실용적 가치가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한 채 분노에 싸여 억울함, 수치심, 적개심, 쓴 뿌리 등 부정적인 감정들을 품고 사는 것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사는 삶이며 정신적 스트레스는 결국 신체적으로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통해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용서의 실용적 가치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용서하지 못하는 삶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매여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과거에 일어났던 불유쾌한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며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용서는 나에게 상처 또는 손해를 끼쳤던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려 놓음으로써 상대방과의 망가졌던 관계를 치유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은 나 혼자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용서는 관계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용서는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불유쾌한 과거로부터의 자유, 훼손된 관계의 치유를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실용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로, 용서에는 도덕적 가치가 있습니다. 용서는 우선 상대방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의 표현입니다. 또한 용서는 이웃 사랑, 즉 인류애의 표현이며 보답을 바라지 않고 제공되는 순수한 선물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인격이 성숙된다는 점에서도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격의 성숙이란 품기 어려운 다른 사람을 나의 삶에 받아들임으로써 나 자신의 그릇의 크기가 확장되는 것을 말합니다. 인격적 성숙이 없다면 나의 삶에 해를 끼친 사람을 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의 불완전성과 부당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한 인간으로서 받아들이는 일이므로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의 표현이며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용서는 영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용서는 죄인인 나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무조건적 용서에 감사하는 행위이며 또한 그 하나님께서 다른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무조건적인 용서에 참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용서는 영적 가치를 지닙니다.
용서는 이처럼 실제적 혹은 초월적 가치들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에게 내적인 힘을 제공해줍니다. 우선, 용서는 분노와 증오의 삶을 떠나 자유로운 삶을 사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또한 용서는 과거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용서는 나 자신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겸손이며 다른 사람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과 힘은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조금씩 길러집니다. 아울러 이런 능력과 힘은 과거에 매이지 않고 희망 가운데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용서는 우리가 고통을 딛고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근육을 키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서에는 삶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대방을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에게 용서라는 선물을 주기로 결단할 때 우리는 치유의 시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상대방이 행한 부당한 일에 대해 개인적으로 복수하거나 응징하지 않기로 결단할 때 마음의 상처의 치유 뿐 아니라 삶 자체의 치유가 시작됩니다. 용서하지 않는 삶은 상처에 붙잡혀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 동안 나치 독일에 의해 유대인 수용소에서 가족들과 함께 고통의 삶을 살았던 코리 텐 붐은 “용서는 한 사람을 감옥으로부터 풀어주는 일이다. 그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사람 자신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또한 용서는 우리의 삶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긋난 관계나 뒤틀어진 삶은 강제로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런 일들은 수리가 아니라 치유가 필요한 일이며 그 치유는 사랑을 통해서만 일어납니다. 용서는 사랑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나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곧 나에게 불편을 주는 이웃, 나에게 손해를 끼친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품는 능력입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은 나에게 연민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불편함과 피해를 주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대방을 품는 일은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용서해야 할 일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용서하고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찾아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인격의 그릇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용서는 용서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가능한 일이며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용서를 통해 선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변화시킬 수 없는 과거를 놓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우리가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선한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스몬드 투투)
박진경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객원교수,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 이메일: familyalive2025@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