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 (31) 잃어버린 성도의 표지, ‘손대접’의 영성을 회복하라
본서는 현대 사회에서 ‘손대접(Hospitality)’이라는 낱말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상업적인 이미지를 가질때 이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교회 안에서도 손대접은 방문객에게 안내지를 건네거나 주차를 돕고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는 ‘봉사 부서의 업무’ 정’도로 축소되어 버렸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학자 크리스틴 폴(Christine D. Pohl) 교수는 손대접(Making Room: Recovering Hospitality as a Christian Tradition)’을 통해, 손대접이 단순한 여가활동이나 친교의 기술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복음의 가장 역동적인 실천 양식이었음을 강력하게 증언한다. 저자는 성경의 증언과 교회사 속 전통, 그리고 현대의 손대접 공동체 현장을 추적하며, 손대접이야말로 깨어진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드러내는 가장 본질적인 통로임을 역설한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은 주리고 상처 입은 자들을 풍성하게 먹이시고 피난처를 베푸시는 ‘관대한 집주인’의 모습이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신 하나님은, 스스로 나그네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 가운데 거하는 취약한 이방인과 객을 압제하지 말고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신약에서 손대접의 신비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속에서 절정에 달한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 어린아이와 소외된 이들을 차별 없이 식탁으로 부르시는 ‘자비로운 주인’이셨으나, 동시에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궁핍한 손님’이셨다. 예수께서는 나그네를 영접하고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는 행위를 곧 주님 자신을 영접하는 행위와 동일시하셨다. 또한 잔치를 열 때 되갚을 능력이 있는 친구나 부유한 이웃 대신, 결코 갚을 길이 없는 가난한 자와 장애인을 초대하라고 가르치셨다.
초대교회에서 손대접은 낯선 나그네를 향한 형제애적 사랑이었다. 성도들의 집은 교회가 되었고, 낯선 자를 맞아들이는 식탁은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는 성만찬의 연장이었으며, 장차 완성될 하늘 잔치를 앞당겨 맛보는 거룩한 성례전적 자리였다.
초기 교부들은 기독교적 손대접이 세상의 접대와 근본적으로 달라야 함을 명확히 규정했다. 자신의 명성과 이익을 위해 유력자를 초대하는 행위를 ‘야심적인 계산’이라 비판하며, 오직 갚을 것이 없는 비천한 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영접만이 참된 의(義)이자 그리스도를 섬기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4세기 이후 교회가 제국의 공인과 후원을 받으며 제도권 중심부로 이동하자, 손대접은 점차 주교의 저택에서 귀족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거나 권세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돌봄은 거리를 둔 비인격적 자선으로 축소되었고, 점차 수도원이나 전문화된 병원, 호스피스로 분리·제도화되었다.
크리스틴 폴은 손대접의 상실이 가져온 비극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오늘날 노숙자, 난민, 고립된 노인, 장애인들이 겪는 가장 비참한 현실은 자원이 없다는 점을 넘어, 사회 속에서 ‘자리가 없는 자(placeless)’, 즉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유령과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손대접은 단순히 ‘도움을 주는 시혜자’와 ‘도움을 받는 수혜자’의 일방적 관계를 넘어선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름을 불러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손대접의 참된 능력이다.
역사적으로 손대접이 가장 활기차던 시기는 성도들이 스스로를 이 땅의 영구한 정착민이 아니라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자각했을 때였다. 우리가 세상의 기득권과 안전지대에 안주하며 더 큰 집, 더 많은 소유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한, 낯선 자를 들일 마음의 여백은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 역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겸손한 자각만이 소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문을 열게 만든다.
사유화되고 폐쇄된 현대 가정에 무턱대고 위험한 낯선 이를 들이는 것은 비현실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 오히려 소그룹, 가정교회, 혹은 뜻을 같이하는 몇 가정이 연대하여 지역사회의 외로운 이웃, 홀로 사는 청년, 이주민 노동자, 상처 입은 이들을 정기적으로 초대하는 ‘안전한 식탁의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는 ‘가까운 나그네’를 주목해야 한다.학업을 위해 타향에 홀로 온 청년, 가족과 멀리 떨어진 외국인 근로자, 가정 해체의 아픔을 겪는 이웃, 은퇴 후 고립된 노인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는 나그네들이다. 단순한 물질 구호를 넘어 ‘식탁의 우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을 열고 그리스도를 맞이하라. 오늘 교회의 위기는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나그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문을 걸어 잠근 차가운 무관심 때문일지 모른다. 손대접은 ‘선택적 과외활동’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의 가장 강력한 실천이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에 선포하는 거룩한 성도의 표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