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책향] (32) 복음과 집 열쇠
로자리아 버터필드의 저서로 세속화된 ‘포스트크리스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상실한 성경적 정체성이자 사명인 ‘환대(손 대접)’의 회복을 역설한다. 저자는 자신의 주방과 거실, 마당에서 매일같이 펼쳐지는 삶의 현장을 통해 복음이 어떻게 물리적 문턱을 넘어 이웃에게 가 닿는지를 입체적으로 증언한다.
저자가 정의하는 손 대접은 사교를 목적으로 손님을 즐겁게 해주는 일회성 ‘엔터테이닝’이 아니다. 그것은 날마다 자신의 주거 공간을 하나님 나라 확장의 통로로 개방하여, 낯선 이를 이웃으로, 이웃을 하나님의 언약적 가족으로 영접하는 거룩한 생활 양식이다. “그들은 인간을 범주나 부류로 축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 모든 사람의 눈빛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본다.” 성경적 환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루틴 속에 이웃을 위한 여백(시간과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집주인과 손님의 인위적 위계가 해체되어, 방문한 이웃이 함께 가사를 돕고 식탁을 차리는 격식 없고 유기적인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세속 문화와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세상 깊숙이 침투하는 삶은 ‘예수님의 역설’에 뿌리를 둔다. 예수께서는 나병환자나 창녀 등 당대 사회에서 부정한 자로 낙인찍힌 이들과 함께 식사하셨으나, 그들의 죄를 승인하거나 함께 죄에 동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거룩하신 만지심을 통해 은혜가 그들에게 전염되도록 이끄셨다. 그리스도인은 타인을 대할 때 ‘포용(Acceptance)’과 ‘승인(Approval)’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죄는 미워하되 타락 속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보존하고 있는 인간 본연의 존재론적 존엄성을 긍정하며, 그들을 안전한 식탁으로 초대하는 것이 복음적 환대의 본령이다.
손 대접은 안락한 교양이 아니라, 내세의 능력으로 공중 권세 잡은 어둠과 맞서는 치열한 영적 전투다. 교회를 향한 냉소와 불신이 팽배한 포스트크리스천 시대에는 관계의 깊이에 따라 말의 힘이 달라진다. 열린 대문, 정성껏 차린 식탁, 신선한 커피, 눈물을 닦아줄 휴지 한 통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아닐 수 없다. 성도가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정직하게 고백하며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질 때, 세상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참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오늘의 교회와 성도에게 주는 교훈은 급진적이지만 다양하고 깊다. 먼저’방어적 요새’가 된 가정을 하나님 나라의 ‘전진기지’로 전환할 것을 강조한다. 다수의 그리스도인이 가정을 세속의 오염을 차단하기 위한 폐쇄적인 방어벽으로만 인식한다. 그러나 성경적 가정은 문을 걸어 잠그는 요새가 아니라, 방황하는 이들을 안식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도피처여야 한다. 가정의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이나 고급스러운 음식을 고집하지 않고, 세탁물이 쌓여 있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이웃을 식탁에 초대해야 한다.
온라인상의 정죄를 지양하고 ‘식탁의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포스트크리스천 사회 속에서 성도들은 타인의 죄와 사상을 향해 손쉽게 비난을 가하지만, 정작 그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관계의 토대가 결여된 강경한 언어는 상대방에게 폭력으로 작용할 뿐이다. 가상 공간에서의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이웃의 고뇌와 상처를 묵묵히 들어줄 수 있는 ‘안전한 경청자’로 서야 한다. 진리를 타협하지 않되 죄인을 품으셨던 그리스도의 자세로 인격적인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고립된 교회를 ‘언약적 가족 공동체’로 재건해야 한다. 주일 공예배에는 출석하나 주중에는 구조적 고독에 시달리는 성도들이 다수 존재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면 독신자, 결손 가정, 이혼자, 독거노인, 청년 등 소외된 지체들이 실제적인 가족의 온기를 경험할 수 있는 유기적 교제가 일상에서 가동되어야 한다. 식사 교제를 교회당 내부의 공식 프로그램으로만 국한하지 말고, 주중 가정 식탁으로 지체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해야 한다. 구체적인 환대 목록과 일정을 수립하고, 재정과 시간의 일부분을 이웃 섬김을 위해 의도적으로 성별하여 집행하는 결단이 요구된다.
“복음은 집 열쇠와 함께 온다”는 희생의 원리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한 영혼을 회복시키는 사역에는 필연적으로 시간적·경제적 손실, 그리고 상처와 배신의 위험이 수반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내어주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현세에서의 영적 가족과 내세의 영생을 약속하셨다. 환대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로감과 재정적 부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즉각적인 결실이나 보상을 계산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이 먼저 조건 없는 용납과 은혜를 입은 자임을 기억하며 매일 삶의 문을 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