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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말씀과 자연묵상] 빛과 어둠의 등불 (눅11:34-35)

빛과 어둠의 등불 (눅11:34-35)                                               

박태겸목사(로뎀하우스 원장)

이 세상을 밝히는 두 개의 등불이 있습니다. 하나는 빛(오르, light)이요, 다른 하나는 어두움(호셰크, darkness) 입니다. 빛은 우리의 눈을 밝게 하여 모든 것을 비추므로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두움은 빛이 없으므로 볼 수 없는데, 어찌 등불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5).”  ‘하루’라는 한 날은 빛과 어둠을 모두 통틀어 말씀합니다. 어둠(호셰크)에 해당하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부터 빛이 창조되었습니다. 빛보다 어둠이 먼저 존재했습니다.  어둠에서 빛이 나온 것입니다.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시139:11–12).” 시편 기자는 어둠과 빛이 모두 주님께 속했다고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빛 가운데만 계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빛이 창조되기 전 혼돈과 흑암 속에도 계셨고 어둠 가운데서도 일하여 빛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어둠의 눈’입니다. 집에 전기가 나가면 처음에는 무섭고 어둡지만 조금 있으면 점점 밝아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깊은 어둠 가운데서 언약을 경험했고(창 15:12), 야곱은 밤에 하나님과 씨름했으며(창 32:22–32), 이스라엘 민족은 밤에 출애굽했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계신 흑암으로 나아가 십계명을 받았습니다(출 20:21).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힐 때 밝은 대낮이 어둠으로 변했습니다. 

 바바라 테일러는, <치유가 일어나는 자리>는 “어둠을 빨리 제거하여 빛으로 도망가는 영성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함께 걸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자리”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민목회의 해법은 성금요일 → 부활주일로 너무 빨리 건너가지 말고, 그 사이의 날 ‘성토요일’의 특징인 ‘어둠과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부활 자체도 사람들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못하는 무덤의 어둠 속에서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성토요일(Holy Saturday)이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람의 영적 자리가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성금요일 십자가 뒤에 주일인 부활이 온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첫 번째 성토요일을 살았던 제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토요일은 “내일이면 부활하실 거야”라고 편안하게 기다리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트라우마’ 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이 반드시 “하나님이 없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깊은 곳에서 일하고 계시는 장소“가 됩니다. 빛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어둠속에서 배우게 됩니다. 빨리 가로지르지 말고 어둠 속을 걷는 것처럼 천천히 갈 때 생기는 마음의 평정이 치유를 만듭니다.

엘리야는 큰 사건들 사이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텅 빈 기다림의 시간”을 로뎀나무 아래에서 가졌습니다. 그는 깊은 우울에 빠져 자기 보호를 위해 하던 노력조차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냥 죽여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어둠 자리가 오히려 주님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하는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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