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기도(요한복음 17:21-26)
에드먼튼 명성교회 안치환 목사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어떤 위기를 느끼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에, 특히 자기가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지 못해도 일단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설교를 많이 듣고, 성경공부를 해서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지금 별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 별로 기도를 하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지금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 할 만큼의 어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도 일단 어려움이 생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간절하게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많이 경험을 했던 일입니다. 한국에서는 매일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예배 때마다 광고를 했습니다. [새벽예배에 나와서 함께 기도를 합시다]하고 광고를 해도 한번도 광고를 못 들은 것처럼 새벽예배에 한번도 나오지 않던 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새벽에 나와서 기도를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것은 [백발백중 무슨 문제가 생겨서 새벽예배에 나왔을 것이다]하고 가서 물어보면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서 기도하러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어떤 분은 새벽에 나와서 간절하게 기도를 하다가 어느 날부터 또 새벽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왜 요즘은 새벽예배에 안 나오십니까?]하고 물으면 그 답변이 또 신기합니다. [기도하던 문제가 다 해결이 되었다]는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이 분에게 기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기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주로 평소에 하셨던 기도는 주기도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암송해서 기도하는 주기도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기도할 수 있도록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던 기도입니다. 평소에 하는 기도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앞에 두고 하셨던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그게 오늘 읽은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기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고,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그 상황을 잘 표현해 놓은 것이 누가복음 22장에 잘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가장 긴박했던 상황 중에서도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것을 보면 누가복음 22:39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 갔더니]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를 하시는데 평소에 하시던 대로 습관에 따라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가장 긴박한 상황이 발생을 하면 평소에 하던 습관이 나옵니다.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안 좋은 것이지만, 평소에 술, 담배를 자주 하던 사람은 그것을 끊고 절제하고 있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다시 찾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방송국마다 드라마 편성국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드라마를 하는데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보여주는 것이, 술을 병째로 벌컥벌컥 마시고, 담배를 쭉쭉쭉쭉 피우는 장면을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문제가 생길 때에 똑같이 따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장면을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청원을 했습니다. 문화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멋있지 않습니까? 십자가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앞에 있는데 평소에 하시던 대로 습관을 따라 기도하는 자리에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모든 사람들은 기도를 하면서도 자기의 원대로 되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을 원하시는데, 나는 십자가를 멀리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다면 [아버지의 원대로 마시옵고, 내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고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누가복음 22:44절에 보면, 예수님의 기도하는 상황을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했으면 땀이 떨어지는데 보니까 핏방울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하셨든지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그랬습니다.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는 어느 하나만 적어도 기도에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어느 하나만으로 표현할 수 없어서 세 가지를 다 반복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다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부목사로 봉사를 하고 있는데, 금요기도회와 새벽기도가 좀 뜨거웠습니다. 그때 제가 한 교구를 돌봤는데, 교구 하나라고 하지만 전체가 1,300명 정도 되었습니다. 웬만한 큰 교회 하나 정도 되는 규모였습니다. 특히 금요기도회에 나와서 기도할 때마다 성도들 중에 몸이 아픈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분인데 근위축성 신장염이라고 하는 희귀한 질병인데, 한 마디로 신장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장을 이식할 기증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도 서로 조직이 맞지 않아서 이식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기증자가 있어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집에 심방을 갔더니 얼굴이 새까맣게 해서 기력도 하나도 없이 누워 있는데, 오늘도 신장이 기증자가 혹시 있을까?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장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교포 중에 한 사람이 조직검사를 해서 컴퓨터에 입력을 했더니 찌직찌직 연결을 했는데 한국 서울 방학동에 있는 김모씨하고 조직이 같다는 것입니다.
이 집에서도, 교회에서도,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날을 잡아서 같은 병원에서 나란히 누워서 미국교포의 신장을 적출해서 김모 성도의 신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수술을 마친 미국교포는 회복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고, 김모 성도는 회복을 하고 있는데, 몸이 좋아져야 되는데 계속 골골한 것입니다. 얼굴이 새까맣게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다시 의뢰를 했습니다. 정밀 검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교포가 떼어낸 신장 안에 암이 발견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교포는 신장을 기증한다고 그 멀리에서 날아와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을 했는데 그 속에 암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수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졸지에 이 사람은 신장을 기증해서 암을 떼어 내고 살았고, 근위축성 신장염을 앓고 있는 김모 성도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어느 누가 미국교포를 욕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론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한국 선수와 미국 선수 사이에 복싱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쪽도 저쪽도 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한다면 그러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복싱 경기는 운동 잘 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가 있는 사람이 이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내 편이 이겨야 하고, 우리가 지금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되지 않느냐 하는 주장이 너무 강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기도하기 이전에 예수님 안에 있는 생각이 벌써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1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하기 전에 벌써 내가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미 기도하기 전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성가를 많이 작곡을 했던 죠셉 아이든이 또 다시 심혈을 기울여서 그 유명한 [천지 창조]를 완성을 했을 때 일입니다. 이 곡을 처음 연주를 하던 날, 그는 몸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지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이 지휘하도록 부탁을 하고 자신은 2층 발코니에 앉아서 그 연주를 감상을 했습니다. 그 날 연주는 놀랄 만큼 대 성공이었습니다. 구약의 창세기와 존 밀턴의 실낙원을 근거해서 만든 아름다운 곡인데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대단한 연주였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일제히 일어나서 지휘자를 향해서 환호의 박수를 보냈습니다.그러자 지휘자가 그 박수를 중단을 시키면서 [이 영광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저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이라는 분이 작곡을 했습니다] 하고 발코니에 안장 있는 하이든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몸을 돌려서 하이든을 바라보면서 열정적인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하이든이 일어나서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을 시켰습니다. [이 영광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제가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만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청중들은 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보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바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기도를 올려드릴 때 응답을 해 주실 분도 하나님 뿐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사역을 하시면서도 한가한 시간이면 기도하시러 한적한 곳으로 가시곤 했습니다. 어떤 큰 일을 앞에 두고 기도하셨고, 그 큰 일을 마치면 또 기도하러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주변에 계실 때에는 호수 근처 어디엔가 기도의 장소가 있었을 것이고, 예루살렘 가까이에 가셨을 때에는 아마도 한적한 겟세마네 동산 안에 감람나무가 많이 서 있는 그 곳으로 가셔서 기도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간절히 기도하실 때에도 [습관에 따라 기도의 자리에 가셔서 간절히 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지순례를 갔을 때에 감람산 중턱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 들러서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곳에 가보니까 2천년이 넘었다는 감람나무, 즉 올리브나무들이 서 있는 동산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정말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곳에 멋진 납작한 바위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도 거기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간절히 기도하셨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바위가 있는 곳에 가서 예수님처럼 실제로 엎드려 보았습니다. 2천년 전에 이곳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셨겠구나 생각을 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그러다가 몇 걸음을 나와서 [여기가 제자들이 머물면서 졸고 자고 했던 곳이구나]하고 생각하는데, 얼마나 부끄럽든지 숨을 곳을 찾고 싶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떤 문제가 있어서 기도를 하실 때에는 기도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하시던 대로 습관에 따라 기도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기도를 본 받아서 문제가 있기 전에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오늘 예배하는 온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