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The ChristianTimes

[설교단상] 소유권 이전사도행전 4:36-5:4런던가스펠교회 정요한 목사

소유권 이전_사도행전 4:36-5:4

런던가스펠교회 정요한 목사

밥 딜런은 대중가수 중에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밥 딜런은 1979년에 Gotta serve somebody라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 은 곡을 발표합니다. 이 노래의 가사 중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You’re gonna have to serve somebody, yes indeed. You’re gonna have to serve somebody. Well, it may be the devil or it may be the Lord. But you’re gonna have to serve somebody.” (당신은 결국 누군가를 섬겨야만 합니다. 섬기는 대상이 악마일 수도 있고, 주님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누군가는 섬겨야 합니다.)

성경적 통찰을 잘 담아낸 가사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중립적인 존 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반드시 주님이나 마귀 둘 중 하나를 섬기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무엇이며, 마귀를 섬기는 것 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악마를 섬기 는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초대 교회]

초대 교회는 성령 충만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두 가지 열매가 있는데 하나는 복음 전파입니다. 초대 교회는 권력자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교회에 나타나는 또 다른 열매는 소유권 이전입니다. 내가 주인된 삶에서 하나님이 주인되신 삶이 되는 것, 나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이전하는 것 입니다.

사도행전 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성령 충만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소유권을 하나님께로 이전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4:33-35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성령 충만한 초대 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나눈 이유는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은혜 받았았다는 고백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정말 은혜 받은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은 소유권을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이전합니다. 그래서 밭이 있는 사람은 밭을 팔고 집이 있는 사람은 집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사도들의 발 앞에 둔다는 것은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표현입니다. 즉, 내가 이 재물에 대해 권한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재물의 권한을 가진 분이라는 의미 입니다.

이에 사도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는 끼니를 굶을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초대 교회가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로 재산을 몰수 합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사유 재산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소유의 일부를 자원하여 교회 안에 형제 자매들을 위해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위로의 아들 바나바]

그리고 본문은 성령 충만한 교회 가운데 한 사람을 소개하는데 요셉이 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요셉은 요셉이라는 이름보다 바나바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사도행전 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왜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렸을까요? 나중에 사울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눈부신 빛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우리가 아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바울을 만나는 것을 꺼려 했습니다. 정말 회심한 것인지, 아니면 예수 믿는 사람을 잡기 위해서 위장 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 바나바의 중재로 사 도들과 바울이 만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바나바가 위로의 사람 이었습니다.

또한 안디옥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때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즉, 바나바는 교회공동체의 신뢰받는 사람이 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1장 24절은 바나바에 대해 이렇게 증언 합니다.

사도행전 11:24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그런데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보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는 이렇게 행동합니다.

사도행전 4: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성령 충만한 바나바는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소유권을 하나님께 이전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재정과 인생이 더이상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기에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래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초대 교회는 바나바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사탄 충만한 아나니아 삽비라]

그런데 성령 충만하고 은혜가 넘치는 초대 교회 가운데 어두움이 드리 웁니다. 이 어두움은 교회 외부의 권력자들이나 유대종교지도자들로 인한 어두움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부터 시작된 어두움 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는 성령 충만한 바나바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탄 충만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5:1-2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 의 발 앞에 두니 초대 교회에서 바나바와 대조되는 한 부부가 나오는데 아나니아라는 사람과 삽비라라는 사람입니다. 아나니아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 는 은혜로우시다’입니다. 삽비라는 ‘아름다운 여인, 보석’ 이런 의미입 니다. 삽비라를 헬라어로 하면 사파이어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아니나와 삽비라의 삶은 은혜롭고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그들 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성령 충만한 바나바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나니 아와 삽비라는 결코 바나바와 같지 않았습니다.

1절에 보면 그들은 ‘더불어’ 소유를 팔았습니다. 여기서 더불어는 초대 교회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던 것과 대조됩니다. 초대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악한 일에 더불어, 하나가되었습니다. 그 악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소유권을 이전하지 않았으면서, 하나님께 소유권을 이전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얼마를 감추고 일부만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그 아내도 알더라’ 라고 되어 있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이 일을 즉 흥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계획하고 한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가 사도 베드로에게 소유를 판 일부를 가져왔을 때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5:3-4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여기서 가득하다는 사도 바울에 에베소서 5:18절에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할 때 같은 단어 ‘플 레로오’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 한번 성령 충만을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닌 계속 해서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성령 충만이 아니라 사탄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사탄 충만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령 충만한 사람은 소유권을 하나님께 이전하여 하나님을 섬깁니다. 사탄 충만한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시간과 재정과 인생의 소유권을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섬기는 사람이 사탄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원어로 보면 성령 충만은 플레로오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 물로 주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성령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 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말했던 “네 마음에 사탄이 가득하여” 라고 할 때, 사탄 충만은 플레로오 능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주어입니다. 즉, 사탄 충만은 사탄에게 마음을 점령당하고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깁니까?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 다. 성령 충만할 때 우리는 사탄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려 할 때 민감 하게 깨닫고 대적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중립지대가 아닙니다. 성령충만 하거나 사탄 충만 둘 중 하나입니다. 아나니아는 사탄이 충만하여 자기 자신을 섬겼습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재산의 일부를 팔아 그 일부를 드렸습니다. 성령을 속일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드리기는 했으나 마음의 동기가 악했습니다.

결국 아나니아는 베드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쓰러져 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나니아의 시신을 메고 나가서 장례를 치루는데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3시간 만에 장례를 치룹니다. 구약을 보면 이렇게 신속하게 장례를 치우는 경우가 있는데 나답과 아비 후, 아간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초대 교회는 아나니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을 인지했기에 신속하게 장례를 치뤘습니다.

그런데 3시간 후에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가 베드로 앞에 옵니다. 삽비라는 남편이 죽은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삽비라에게 묻습니다.

사도행전 5:8-9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 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베드로가 삽비라에게 이것이 전부인지 물었을 때, 삽비라는 정직하게 대답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삽비라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거짓말은 사람을 속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려 한 것입니다. 결국 삽비라도 아나니아처럼 쓰러져 죽습니다. 본문은 그 순간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사도행전 5:10-11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 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삽비라는 사도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졌습니다. 삽비라는 자신의 일 부를 하나님께 드리며 자기 소유권을 주장했으나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생명이 누구의 소유인지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초대 교회와 이 일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할 때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왜 아나니아와 삽 비라를 즉각 심판하셨을까?’ 그 이유는 구약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 아간의 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여리고 성을 점령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리품 중에서 은과 금은 여호와의 곳간을 위해서 따로 구별하고 손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은과 금의 일부를 자신의 따로 빼돌 렸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합니다.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는 새롭게 시작된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아간처럼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구약을 헬라어로 옮긴 70인역 성경에서 아간이 ‘감추었다’ 할 때 쓴 단어와 오늘 본문 5장 2절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얼마를 ‘감추매’가 같은 단어입니다. 누가는 일부러 이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즉각 심판하셨는가, 구약 에서 아간의 죄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것처럼 이제 시작되는 초 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오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헌금 액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 얼마나 헌금했는지, 헌금 액수에 대해 한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소유권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소유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 가에서 피흘려 그 피값으로 우리를 사시고 하나님께 드리셨기 때문입 니다. 이 십자가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더이상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 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로 사는 것보 다 이 세상에서 복된 삶은 없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460년 넘게 교회가 성도들에게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제 1문답이 이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Q.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A.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 분은 그의 보배로운 피로 나의 모든 죄값을 완전히 치루시고,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나를 해방 시켰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내 머리카락 하나도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지키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게 하십니다. 내가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성령으로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 그분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과 준비를 진심으로 갖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사는 것은 부담이나 괴로움이 아니라 유일한 위로를 경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사는 인생 되시길 축복합니다.

[맺음]

말씀을 맺습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소유권을 이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탄 충만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 를 섬기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자신을 섬기고 자신을 높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심판하심으로 그들의 생명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복된 삶은 소유권을 하나님께 이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인생은 살아서나 죽어서나신 실하신 예수님의 위로를 경험합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께 내 생각과 감정과 시간과 재정과 인생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이전하고 바나바와 같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교회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