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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아직 어리다’고 말하지 말라예레미야 1:4~10밴쿠버복음자리교회 조대호

‘아직 어리다’고 말하지 말라_예레미야 1:4~10

밴쿠버복음자리교회 조대호

동기부여로만 움직일 것인가?

  지난 월요일에 목사님들과 칠리왁에 있는 엘크 마운틴에 등산을 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식구들은 절대 데리고 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왜냐하면 너무 힘든 코스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다녔던 산중에 가장 힘들었습니다.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사실 내려오는 것이 몇 배나 더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올라갈 때는 7명 중에 꼴찌로 도착했지만, 내려올 때는 세번 째로 내려왔습니다. 거기서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motivation)동기부여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였습니다. 제가 빨리 내려온 것은 ‘화장실’이 급했기 때문입니다.

  ‘동기부여’는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불어 넣어줍니다. 그런데 그런 동기부여 조차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앞으로 여러분과 이 가을에 나누고자 하는 주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다시 되돌아가야 할 제자리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기분으로 사는 것보다 명분과 뜻이 있음을 발견하라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다짜고짜 “내가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선언해 버리셨습다. 좋았을까? 아니요,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그 길을 가겠다고 작정기도를 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은 “내가 너를 세웠다”고 통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이렇게 즉흥적으로 일하시는 분일까요? 우리가 보기에는 즉흥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5)을 다시 한번 읽어 보면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유다왕국의 선지자로 세우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하셨고, 그 계획에 따라 거룩하게 “구별”해 놓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렇게 예레미야를 사용하시기 위해 그의 삶도 구별시켜 두셨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일상 속에서 ‘내가 특별히 구별된 사람’처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주님이 부르실 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고 하면서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향한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걸 발견했습니까? 그래서 나를 특별히 구별시켜 두셨다는 것도 느끼고 있습니까? 대부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명’이라는 것으로 피곤하게 괴롭히는 분이 아닙니다. 교회가 모호하게 “소명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부추기고 다그치는 것은  비성경적 신앙입니다. 오히려 주신 소명과 나를 향한 계획을 발견하고 따라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 입니다.

우리보다 오래 전부터 더 많이 준비하신 분이 하나님이고, 그 일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세워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또 그 상황에서 우리를 구별되게 하셨습니다. 

나이에 걸맞는 사람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불안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는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는 갈릴교회를 개척하신 조영택 목사님입니다. 목회자로서는 새로운 꿈을 꾸기 어렵다고 여기는 57세의 나이에 유학생들을 위해 갈릴리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생전에 저에게 자주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어.” 목사님이 그런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계획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불러 주셨고 힘을 주셨기 때문에 그 연세에도 오늘날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밀려오는 ‘불안함’은 ”저는 아직 어립니다”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직 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영적 도전은 사탄의 유혹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결론 지으려 하는 사사시대의 교만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어려서” 또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할 수 없다”는 불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임에도 ‘저는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말재주가 없는 어린 아이 같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부정했습니다. 정말 말을 버벅거려서 그런걸까요? 

  Paul Washer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화려한 말로 사람들을 모을 수는 있지만,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의 영이 없이 설교를 잘 하는 것 보다, 차라리 제가 이 설교에서 버벅거리는 것이 더 낫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경력과 재력과 인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우리를 세우셔서 일하실 때에는 나이의 경계도, 성별과 학력과 재력의 경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그 말씀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대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배우들의 연기와 sub title(자막)’입니다. 

뒷걸음질 친 만큼 더 가까이 다가오신 하나님

  예레미야가 불안함 가운데 물러서려고 할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8)”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평안함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평안함을 깨뜨리는 것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싸우지 않고는 평안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문제에서 도망친다고 해서 평안함을 얻지는 못합니다. 문제를 회피하고 도망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평안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밑에 있는 불안함은 언제든지 터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를 믿지 말고 나를 지으신 분을 신뢰하라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피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이렇게 자신 있어 하실까요? 하나님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너 믿어”라고 예레미야를 믿으셨던 걸까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신 있으셨던 것은 예레미야를 신뢰해서가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가 그 일을 잘 해낼 것을 믿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돌보시고 시련 가운데서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9)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하셨습니다. 말재주가 없다고 하며 한발 물러선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직접 그의 연약함에 손을 대셨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들 중에는 때론 ‘필요 이상의 것’을 얻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보다 조금 더 있어야 마음에 평안이 올거라 여겨서 이미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함을 키워갑니다.

주어가 하나님으로 시작되는 인생의 문장을 완성하라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그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말씀해 주셨다 (10)”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리라.” 그런데 과연 이게 혼자 가능한 일일까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는 주어가 있다 “내가 너를 세워!”. 하나님이 우리의 ‘주어’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르심에 반응할 때 능치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실 크고 놀라운 일들을 방해하지 맙시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일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것입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싸우려 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힘으로 싸우십시오. 혼자만의 싸움은 파괴하고 파멸하는데 끝나지만 주님과 함께 싸우면 건설하고 희망의 씨앗을 심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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