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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하나님의 초청(3)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_마11:28-30_밴쿠버지구촌교회 김봉수 목사

마11: 28-30 하나님의 초청(3)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밴쿠버지구촌교회 김봉수 목사

이민 생활과 유학 생활 초기에 아마 한 두 번쯤은 따듯한 밥상으로 초대를 받아 본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외롭고 가슴 시린 시간을 보낼 때, 따뜻한 식사와 위로는 한 걸음을 내 딛게 하는 힘이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민 동기들끼리 서로 초대하며 고단한 시절을 함께 버텨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초대로도 일시적 위로를 얻는다면, 인생의 고단한 짐을 지고 살아 가는 우리가 주님의 초청을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살후2:14절과 16절은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영원한 위로와 소망을 주신다”고 선포하십니다. 주님의 초청 안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위로와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초청하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누구입니까? 성경적인 관점과 마11장의 맥락에서 두 가지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먼저 ‘죄의 짐을 진 자’입니다. 율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의의 옷이 깨끗하지 못함(사64:6)을 발견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두 번째 성경에서 말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삶의 무게’와 ‘죽음의 두려움’을 가진 자들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후, 수고와 땀을 흘려야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삶의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가인 이후에는 수고와 땀을 흘려도 땅이 엉겅퀴를 내는 고통의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분리 됨으로 인해 흙으로 돌아 가야 하는 죽음의 두려움이 찾아 왔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은 하나님과 분리된 자들이 갖는 짐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죄의 짐을 진 자와 삶의 무게에 눌린 자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을 해결하지 못한 자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11장의 맥락에서 보면 매우 특별한 짐 진 자가 등장합니다. 바로 감옥에 있는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향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곧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주님의 나팔이었습니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기대했던 하나님 나라가 삶의 현실에 나타나지 않자,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을 배반하지는 않았지만, 믿음이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질문을 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맞나요?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나요?”

이렇게, 주님을 따라 가지만 진리가 쉽게 성취되지 않는 것처럼 보여 괴로워하는 신앙인,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말씀으로 살아 가다 낙심하며 흔들리는 성도들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라고 부르시며 초청하십니다. 

그렇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주님께 와서 누리는 삶은 무엇입니까? 28-29절입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주님께 오면, 주님이 우리를 쉬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죄의 짐과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주님을 찾아 왔을 때 그들에게 쉼을 주는 것이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숨었을 때, “아담아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죄와 허물을 덮어 주시는 ‘쉼’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옛 야곱이 죽고 이스라엘이 되는 ‘존재의 변화’를 경험하는 쉼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주님께 가면 쉼과 안식을 얻습니다. 

또한, 주님께 가면 어떻게 쉼을 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가면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기 때문에 쉼을 얻게 됩니다. ‘멍에를 메는 것’이 고생스러운 것이지 어떻게 쉼이 됩니까? 주님의 멍에는 혼자 지는 멍에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 지는 멍에 이기 때문에 쉼을 얻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에서 소에게 멍에를 씌울 때, 두 마리를 한 짝(겨리)으로 묶습니다. 한 쪽은 경험이 많고 힘이 좋은 베테랑 소로 하고, 다른 한 쪽은 ‘길들여 지지 않는 어린 소’를 한 멍에에 묶습니다. 베테랑 소가 멍에의 무게와 쟁기의 하중을 대부분 받아주기 때문에, 어린 소는 옆에서 경험 많은 소가 이끄는 대로 발을 맞추어 걷기만 하면 밭을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나의 멍에”는 예수님이 멍에의 무게를 다 짊어지시고, 우리는 옆에서 발만 맞춰 걸어가는 ‘은혜의 멍에’를 말합니다. 즉, 주님은 주님의 능력으로 이끌어 가는 멍에를 우리와 함께 메자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멍에를 메는 자들은 주님의 능력과 영광으로 받쳐 주는 멍에를 메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멍에를 메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내 삶을 받쳐 주고 이끌어 가는지 배우게 됩니다. 즉, 주님께 가면 그의 능력으로 이끄시는 멍에를 메고 배우기 때문에 쉼을 얻습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사명자 반’이라는 책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한 전도사님이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이유로 풀타임 뿐 아니라 파트 타임 사역 자리도 찾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재철 목사님이 듣고 전도사님 가정에 풀타임 사역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제안을 받기 전에 전도사님의 모 교회에서 파트 타임 사역 자리가 나와 사역을 하겠다고 답을 주게 되었습니다. 먼저 파트 타임 사역에 응답한 관계로 이재철 목사님의 풀 타임 사역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 하게 됩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파트 타임 사역을 하기로 약속 했다고 해도, 풀 타임 자리가 나오면 그 곳으로 부임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은 세상의 계산법을 내려 놓고, 하나님과의 약속, 곧 주님의 멍에를 멘 것입니다. 그래서, 풀타임 사역을 거절하고, 파트 타임 자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멍에를 메었더니 주님의 능력이 그 전도사님의 가정과 목회를 받쳐 주었습니다. 세상의 셈 법을 뛰어 넘어 주님의 멍에를 멘 전도사님은 파트 타임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하였습니다. 후에 분열 속에 아파하던 한인 교회에 담임 목사로 부름 받아,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는 통로로 사용되었습니다.

주님의 멍에는 주님이 친히 무게를 지시고 능력으로 받쳐 주시기 때문에, 주님의 멍에는 결코 무겁지 않고 가볍습니다. 내 힘으로 멍에를 끌고 가려고 하면 짓눌리지만,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발을 맞추면 참된 쉼을 누리게 됩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주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멍에를 받쳐 주실 때, 항상 온유와 겸손함으로 하십니다. 만일 주님이 능력과 힘은 있는데 강포와 무례함으로 한다면 어떻게 멍에 메는 법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완악하고 미숙한 우리를 온유함으로 끝까지 기다려 주시고, 겸손함으로 우리와 함께 멍에를 져 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주님을 배반하고 실의에 빠진 베드로에게 찾아오셨을 때도, 조용히 숯불 위에 생선을 구워 아침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가지신 주님이 온유와 겸손으로 “내 양을 먹이라”는 영광스러운 멍에를 다시 맡겨 주셨습니다. 온유와 겸손함으로 함께 지시는 멍에로의 초청입니다. 베드로는 그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메고 평강과 은혜의 길을 걷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베드로의 삶입니다. 

죄의 짐과 인생의 짐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다 낙심한 모든 짐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오십시오.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멍에 안에 거할 때, 주님이 받쳐 주시는 능력 안에서 참된 안식과 쉼을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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