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를 따라 나누는 회복된 공동체 (행2:44-47)
기독교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의 체질이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더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존재로 변해가고 있으므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의 차이를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빵 종류도 여러가지이며, 셀러더 종류도 여러가지이며, 트레싱 종류도 여러가지 입니다. 가족 중에는 여러 다른 종류의 알러지 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유’ 알러지가 있고, 다른 사람은 ‘두유’ 알러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숭아’ 알러지를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체리’ 알러지가 있습니다. 몸이 필요로 하는 것과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대량 생산으로 기계로 찍어낸 공산물과 농산물들이 인간의 유전자를 헤치며 많은 질병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유기농과 자연에서 얻은 식품들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생존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명사는 고정되어 있습니다. 동사는 고정된 명사를 움직입니다. 그런데 형용사는 다른 물질과 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아름답고 진실하고 유익한 식품을 만드는 ‘형용사’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하나님은 명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동사입니다. 여기에 성령님은 형용사입니다. 오순절 성령님이 임하시니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모국어로 제자들의 방언을 알아들었습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서로 통하게 만듭니다. 성령이 임하면 믿는 사람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전에 내게 소중했던 것이 이제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 통용입니다. 로뎀하우스의 사역은 ‘통용의 개념’입니다. 기도와 묵상의 공간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필요로 하는 사람과 나누어 쓰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지친 영혼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원래의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도 소중한 것을 서로 나눔으로 함께 행복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사와 동사로 안 되고 형용사인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가능합니다.
이것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생길 때 가능합니다. 마음이 닫히고 욕심스럽고 경쟁적인 구도에서는 발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런 정한 마음의 영성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체인 사랑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이를 증명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이것을 깨닫게 하실 때 기독교는 다시 세상을 밝히는 밝은 빛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역사는 500년만다 중요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500년전 1517년 종교개혁 때에는 말씀이 복음이요 진리 였다면, 이제 새로운 종교개혁은 말씀을 경청하고 묵상하여 필요를 따라 나눠주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볼 때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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