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공간
‘거기 참 좋았지…’ 싶은 공간이 내게는 많지 않다. 선교사로 살다보니 여기저기 가본 곳도 많았고 살아 본 곳도 많다. 그 모든 공간에 내가 존재했으나 정말 나는 거기 있었을까 싶을 때가 많다. 내가 가장 나답다 싶은 곳은 어디를 가나 기도실이다. 기도의 공간! 하나님과 마주앉는 공간… 넓지 않아도 되고 좋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 공간을 채우시는 그 분의 임재로 충분하다. 나는 그 공간에서 자유롭다. 나는 그 공간에서 온전히 나이다. 그렇다고 내가 거창하게 기도의 사람이라거나 기도의 용사는 아니다. 기도의 용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는 그저 그 앞에 앉는 것을 좋아하는 일인이다. 내 기도의 대부분은 침묵과 누림이다. 웅얼거림과 애통, 통곡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지만 그런들 어떠랴! 아버지 앞인데…
나는 그 곳에서 철없는 딸이다. 응석을 부리고 애교를 부린다. 갱년기가 지난 아줌마여도 철없이 깔깔거리고 다리를 뻗고 엉엉 울기도 한다. 힘센 아부지가 있는 아이는 더이상 불안하지 않다. 나는 그 곳에서 사랑받는 신부다. 신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여자다. ‘곱다. 어여쁘다.’ 신랑의 속삭임은 얼마나 달콤한가. 신랑의 모습은 또! 그 선하심과 의로움, 그 당당함과 책임감! 입이 근지러워서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 곳에서 맨 발의 종이다. 내 주인은 바라만 봐도 존경스러워 그 집 종이라는 게 의기 양양해지는, 귀를 뚫어 평생을 그 집 종으로 살고자 하는 종이다. 자유롭고 싶지않은 무익한 종이다. 나는 그 곳에서 나다. 몸이 아픈 선교사이기도 하고, 길잃은 엄마이기도 하다. 가을 바람과 노을을 보며 우수에 젖고 커피를 못마셔도 동네 커피숍에서 나는 커피 냄새를 좋아하는 중년의 여자이기도 하다. 거기서 나는 온전히 나다. 혼자다. 거기서 나는 함께다.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둘이다. 넷이다. 군중속에 있기도 하다. 거기서 나는 그를 누린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만들 수 있는, 비밀스런 이 공간… 거기가 내 집이다. 내 안식처다. 이 공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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