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33) 내면을 돌보는 일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관심이 갔던 것은 그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례하고 악한 일을 지나면서 많이 지치고,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깊은 상처가 의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뿐이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여전히 끌어 안고 풀어내지 못한 상처로 고통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외면과 내면 사이의 서늘한 온도차를 느낀다. 겉으로는 거룩한 가면을 쓰고 있어서 괜찮은 듯 하나 진정한 샬롬은 없다. 표면적으로 유능하고 침착하며 교회와 사회에서 신실한 직분을 감당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만성적인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수치심과 싸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신앙생활이 깊어질수록 거룩한 방어의 가면은 더욱 견고해지지만, 정작 영혼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서 하나님과 타인,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깊이 단절된 채 살아가곤 한다.
저자는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인간의 타락 사건을 단순한 정죄의 선언이 아닌,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추구라는 새로운 렌즈로 바라본다. 하나님이 아담을 향해 던지신 첫 번째 질문인 “어디 있느냐?”는 수치심과 공포에 숨어 버린 인간의 내면에 다정한 호기심을 갖고 다가오시는 사랑의 속삭임이다. 고통받는 인간은 통제와 완벽주의, 자기비난, 혹은 무감각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껴입은 채 고통을 홀로 감내하려 하지만, 내면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단순히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 무엇이 아니라 공감하는 증인이 부재한 상태에서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무시된 내면의 통증은 불면이나 과민성 대장 증후군, 탈진 같은 몸의 경고등으로 표출되기에, 우리는 고통을 회피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몸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오늘 당신은 어디 있나요?”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응답하며, 판단하지 않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비로소 신경계가 안정되는 ‘관용의 창’ 안에서 하나님께 닻을 내리게 된다.
이어서 하나님이 던지시는 두 번째 질문인 “누가 말했느냐?”는 영혼을 형성해 온 내면의 목소리와 거짓 서사를 분별하도록 이끈다. 에덴동산의 뱀이 뿌려 놓은 핵심 거짓말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취할 자격이 없으며,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고, 존재 자체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믿게 하는 환멸과 수치심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내면 가족 체계 치료 모델과 고대 사막 교부들의 지혜를 결합하여 내면의 불안, 분노, 일중독 등 방어적으로 극단화된 자기의 여러 부분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눌 것을 제안한다. 죄악된 행위만을 강하게 조명하여 죄책감을 가중시키는 교회의 도덕주의적 접근을 내려놓고, 내면의 지친 부분들을 향해 자기 정죄가 아닌 자기 자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는 것을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바로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질문인 “그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는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갖가지 중독과 자가 치료 행위를 직시하게 한다. 이는 술이나 약물, 포르노와 같은 외적 중독뿐 아니라, 종교적 완벽주의, 사역에 대한 집착, 타인의 승인에 목매는 동반의존 역시 깊은 내면의 파열과 외상적 단절을 스스로 달래보려는 시도임을 밝힌다. 중독을 단순히 도덕적 의지력의 결여나 징벌적 타락으로 규정하는 표면적 행동 교정은 결코 깊은 치유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중독은 그 아래 잠복한 더 깊은 상처를 알리는 이정표이자 증상일 뿐이다. 이 허기와 결핍은 강박적인 행동 수정이 아닌 성찬의 신비 속에서 비로소 채워진다. “누군가는 잊기 위해 마시지만,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마십니다”*라는 고백대로, 빵을 씹고 포도주를 음미하는 성찬의 체화된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 안에서 분열된 영혼의 파편들이 다시 하나로 재결합되는 온전한 샬롬을 맛보게 된다.
‘내면을 돌보는 일’ 은 인간을 문제를 풀어야 할 대상이 아닌 자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하게 된다. 나아가, 신앙을 지적·관념적 영역으로만 제한하던 이분법을 넘어 하나님이 주신 몸과 감정의 신호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체화된 영성’을 회복하게 된다. 내면의 그늘과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할 때 비로소 진정한 귀향이 시작된다는 진리를 증언한다. 수치심과 불안으로 지친 인간을 향해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던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거룩한 가면을 내려놓고 당신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다. 내면의 통증을 은폐하기보다 가만히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비의 하나님께 응답할 때, 우리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영혼의 참된 안식과 회복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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