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젖어 사는가?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악 공연의 성지로 꼽히는 곳 중 하나가 미국 뉴욕의 카네기 홀이다. 지난 2022년 2월 24일, 카네기 홀은 다음 날(25일) 예정되었던 공연을 이례적으로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인 러시아 지휘자인 게르기예프와 피아니스트 마추예프가 협연하기로 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연주일정이었다. 이유는 이 두 연주자 모두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전 세계의 공분을 일으키는 가운데, 푸틴의 행적을 적극 지지하는 두 사람의 공연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던 것이다.
결국 카네기홀은 결국 공연 하루 전에 두 사람의 공연을 취소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렇게 되면 표를 산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그래서 카네기 홀은 그러나 동일한 곡으로 연주는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하고, 대신 지휘할 지휘자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음악감독인 야니크 네제세갱을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협연 피아니스트를 누구로 교체할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공연 당일인 25일에야 갑작스럽게 발표했다. 세계적인 한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었다.
알고 보니 발표 전날 조성진은 베를린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자정 무렵에 카네기 홀로부터 긴급 요청을 받고 부랴부랴 짐을 싸 7시간 만에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연 75분 전 전에야 겨우 리허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리허설도 거의 못한 상태에서 곧바로 연주를 감행한 것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연주곡 2번은 듣기에 참으로 큰 감동을 주는 명곡이지만, 피아노 연주자들에게는 연주자들의 무덤이라고 부를 정도로 난해한 곡이다. 조성진은 이 곡을 2019년 이후 연주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연주시간만 40분이나 되는 이 길고 난해한 곡을 암보로 한치의 오차없이 연주하였고,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였다. 5층까지 빽빽하게 들어선 청중 대부분이 기립해서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 연주를 리뷰했던 ‘뉴욕 클래시컬 리뷰’는 이렇게 평가했다. “첫 음의 시작부터 그의 터치는 기교적이면서도 명료했다. 그의 손길 너머로 거대한, 깊은 의미를 끌어내는 듯한 묵직한 감정의 무게가 느껴졌다. 조성진은 복합적이면서도 단호하게 음악을 표현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그것은 평소 조성진이 이 곡을 몸에 밸 정도로 듣고 연습하고 준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거의 호흡과 같이 이 곡이 그 안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의 리허설 없이 공연을 이렇게 수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람은 평소에 젖어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에 젖어 살아야 할까?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 그분의 다함없는 신실한 은혜에 젖어 살아야 할 것이다. 나를 돌아보자. 나는 요즈음 무엇에 젖어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