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단 (Tel Dan)
국립공원 텔단은 이스라엘 최북단 레바논과의 경계지점에 위치해 있다. 텔(Tel) 이란 고대 사람들이 살던 도시가 전쟁 가운데 폐허가 되고 다시 사람들이 살기를 반복하면서 그 지대가 높은 언덕이 된 곳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역명에 ‘텔’이 붙으면 이스라엘에서는 일반적으로 고대 사람들이 오랜 기간 살던 도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텔단에는 누가 살았을까? 텔단이란 이름에서 옛날 단지파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는 것을 즉각 알 수 있지만,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단지파가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라이스’(삿 18:7) 혹은 ‘레셈’(수19:47)이라고 불리던 지역이었다. 4천년전 라이스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 지금도 이 곳 텔단에 남아있다. 이곳에 흙벽돌로 지은 성문이 남아있는데 이 성문 이름을 ‘아브라함 문’이라 부른다. 이것은 아브라함 시대의 성문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로부터 가나안땅으로 들어올 때, 이곳을 통과했을 수도 있다. 또한 고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돌판이 하나 발견이 되었는데, 기원전 9세기경에 새겨진 “다윗의 집”(House of David)이라는 아람어 단어가 새겨진 돌판이 발견됨으로 다윗이 역사적 실존 인물임이 증명되었다.
단 지파는 헤르몬산 아래쪽에 위치하며, 물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 좋아 보였는지 그곳을 점령하여 단지파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관하지 아니함이라 (삿 18:7)
라이스에 살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멸하라고 하신 가나안의 일곱 족속에 속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도 왕과 같은 중앙 통치 조직이 없이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이었는데, 단지파에게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고 하루아침에 멸망하고 말았다.
원래 단지파 사람들은 예루살렘 서쪽 낮은 평야 지대부터 욥바 맞은편 경계(수 19:41-46)의 땅을 분배 받았는데, 이곳은 해안평야의 블레셋과 유대지파 사이에 위치한 곳이다. 사사시대에 블레셋은 철기를 사용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청동기 문명이었다. 블레셋과 부딪치는 지역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힘센 사람 삼손을 단지파에 보내셨다(삿 13:24). 그는 살아 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을 괴롭게 했었고, 그가 죽을 때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다(삿 16:30). 그가 죽은 후 지도자를 상실한 단지파 사람들은 다섯명의 정탐꾼들을 파견했고, 그들은 단지파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본 것을 소견대로 말했다.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삿 18:10)
하나님은 단지파에게 미가가 지은 우상과 제사장을 취하여 그들의 신으로 섬기라고도, 라이스 사람들을 죽이고 그 땅을 차지하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단지파는 단지 눈에 보이는대로 행하고 하나님이 주셨던 예루살렘 남서쪽의 낮은 평야지대를 포기하고 대거 북쪽으로 이주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곳이 좋았을 수도 있다. 이곳에는 요단강 이름을 딴 ‘단의 샘’(Spring of Dan)이 1년 내내 터져나오는 곳이며, 네 개의 요단강의 물 근원 중 가장 많은 양의 물을 낸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자면 당연히 이곳은 하나님이 단지파에게 주신 땅보다 더 좋아 보일 수도 있다. 순례자들은 텔단의 풍족한 물, 월계수, 시리아 단풍나무, 포퓰러, 갈대, 그리고 무화과 나무 숲을 지나 여로보암의 산당에 이르게 된다. 솔로몬이 죽은 후, 통일왕국 이스라엘은 한반도처럼 두 개의 나라로 나뉘게 되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통치자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두고 우상숭배를 행하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곳이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왕상 12:28-20)
현재 기원전 10세기의 솔로몬 성전은 예루살렘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 이슬람 사원인 ‘바위사원’, 즉 ‘황금돔’이 있을 뿐이다. 솔로몬 성전과 거의 동시대에 세워진 텔단의 여로보암의 산당은 아마도 솔로몬 성전의 복사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산당에는 물두멍, 성소, 지성소 그리고 돌제단이 있었다. 지금은 쇠로 제단을 형상화 해놓았지만, 그 규모를 보면 텔브엘세바와 텔아라드의 돌제단보다 규모가 훨씬 컸음을 알 수 있다. 여로보암은 이곳에서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자신들의 신을 섬겼던 것이다.
단지파는 하나님의 유업으로 받은 낮은 평야 지역을 떠나 바알신을 섬기는 레바논과의 접경에 정착했다. 물도 좋고, 산도 좋고, 미가의 신상과 레위인도 있어서 멀리 실로까지 절기 행사를 지키러 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9세기 이후로 아람과 앗수르가 쳐들어 오면서 이곳은 제일 먼저 전쟁의 소식을 전하는 곳, 전쟁으로 짓밟히는 곳이 되었다.
글, 사진_ 이호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