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다시 시작된 종교개혁 3부작
제1편. 다시 종교개혁을 묻다 – 비텐베르크에서 식탁으로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 10월은 기독교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달이다. 바로 종교개혁 기념일(Reformation Day)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못 박은 그날의 울림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며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근본 정신을 되새긴다. 하지만 이 개혁 정신이 이제는 거대한 교리나 제도 개혁의 차원을 넘어, 일상의 가장 작은 단위, 곧 가정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본 기고문은 루터가 문을 열었던 개혁이 5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가정이라는 문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가정에서 다시 시작된 종교개혁》이라는 제목 아래, 제1편은 ‘다시 종교개혁을 묻다 – 비텐베르크에서 식탁으로’를 통해 개혁의 현장이 성문에서 식탁으로 옮겨져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이어질 제2편 ‘루틴으로 다시 세우다 – 신앙전수의 종교개혁’에서는 실질적인 신앙 전수의 방법을, 마지막 제3편 ‘세대가 잇는 미래 – 개혁은 가정에서 끝나지 않는다’에서는 가정에서 시작된 개혁이 교회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비전을 다룰 예정이다.
이 3부작 시리즈는 루터의 외침이 그러했듯,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이야기하자’는 순수한 초대가 되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 모두가 자신의 가정이라는 비텐베르크에서 개혁의 첫 못질을 시작할 때이다.
문 앞에 붙인 종이 한 장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의 어느 대학 교회 문에 한 장의 종이가 붙었다. 마르틴 루터가 신학 토론을 제안하며 붙인 95개의 논제이다. 그는 당시 교회의 중심을 뒤흔들 생각은 없었다. 다만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이야기하자”는 순수한 의도였다. 하지만 그 종이 한 장이 역사를 바꿨다. 교회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갔고, 그날 이후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말씀을 듣는 백성”이 되었다.
508년이 지난 지금, 나는 루터가 성문에 못질하던 그 장면을 상상하며, 한 가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진다. “오늘, 내가 다시 못질해야 할 문은 어디인가?”
성문에서 식탁으로
루터가 향했던 문이 ‘비텐베르크의 성문’이었다면, 오늘 우리가 못질해야 할 문은 ‘가정의 식탁’이 아닐까. 그때 교회는 면벌부를 팔았지만, 지금의 교회는 ‘프로그램 면벌부’를 나누어 주는 것은 아닐까. “이 성경공부만 하면, 이 사역에 참여하면, 이 캠프에 오면…” 그러나 그 많은 프로그램 속에서도, 부모와 자녀는 서로의 믿음을 묻지 않고, 세대는 서로의 하나님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 개혁은 성문이 아니라, 가정의 식탁에서 시작된다.”
‘위탁된 신앙’이라는 새로운 면벌부
루터 시대의 문제는 ‘돈으로 면죄를 사는 신앙’이었다면, 오늘의 문제는 ‘위탁으로 면책하는 신앙’이다. “우리 교회 교육부가, 주일학교가, 목사님이 잘하겠지.” 그 순간, 부모는 신앙의 주체에서 관람자가 된다. 자녀는 ‘부모의 믿음’을 관찰하지만, 그 믿음이 ‘자신의 신앙’이 되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D6가 말하는 개혁은 단순하다. 루터가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라 말했다면, D6는 “모든 부모는 제사장”이라 외친다. 신명기 6장은 그것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다. “이 말씀을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말씀의 루틴이 사라진 자리
우리는 ‘하루 10분 말씀 루틴’을 잃어버렸다. 그 대신 수많은 알림창과 영상이 우리의 시간을 채운다. 그러나 루터가 말했던 개혁은 “하루의 회개”였다. 그는 수도원에서만이 아니라, 밥상 위에서도 성경을 읽고, 아이들과 신학을 이야기했다. 그것이 바로 루터의 “탁상담화(Table Talk)”이다.
그의 식탁은 강단이었고, 아이들의 질문은 교리문답이었다. 그 단순한 대화 속에서 신앙이 전수되었다. 오늘 우리의 식탁에서도 그 일이 일어나야 한다. 앉을 때, 걸을 때, 눕고 일어날 때, 그 네 때의 루틴이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루터의 비텐베르크가 문 앞이었다면, 우리의 비텐베르크는 가정의 하루이다.
“나는 오늘도 못질한다”
루터는 교황의 권위 앞에서도 떨지 않았다. 그가 믿었던 것은 ‘진리의 말씀’이었다. 오늘 우리는 거대한 제도나 담론이 아니라, 한 끼의 식탁과 한 번의 기도에서 다시 시작한다. 나는 매일 저녁, 가족과 함께 밥상을 차리며 조용히 내 마음의 문에 말씀을 못질한다. “주님, 오늘도 이 식탁이 나의 비텐베르크가 되게 하소서.” 이 작은 못질이 교회를 바꾼다. 이 작은 대화가 세대를 잇는다. 이 작은 식탁이 복음을 다시 세운다. 10월의 바람이 차가워질 때, 가정의 식탁에서 나는 또다시 그 못질 소리를 듣는다.
“이제 개혁은 교회가 아니라, 가정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