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박창수 목사의 희년이야기 희년의 예언자, 이사야(7)

[칼럼: 희년 이야기] 희년의 예언자, 이사야(7)

[희년 이야기] 희년의 예언자, 이사야(7)

사 56장부터 58장까지의 본문은 그 처음과 마지막이 ‘안식일 준수’를 공통 주제로 한 수미상관 구조의 큰 한 단락이다. 따라서 사 56:1의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는 말씀에 담긴 뜻의 핵심은 바로 사 58:6-7의 “내가 기뻐하는 금식”에 담긴 구체적인 실천인 것이다.

사 58:6-7, “6.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는 삶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한마디로 희년 실천이다. 왜 그런가?

안식년과 희년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희년에는 네 가지 정의가 실현되는데, 그 네 가지 정의는 바로 토지 정의, 주거 정의, 노동 정의, 대부 정의이다. 가난 때문에 땅을 팔아버린 가난한 사람은 희년에 그 땅을 되찾는데, 이것이 ‘토지 정의’이다. 또 가난 때문에 열두 지파의 촌락에 있는 집과 레위지파의 성읍에 있는 집을 팔아버린 가난한 사람은 희년에 그 집을 되찾는데, 이것이 ‘주거 정의’이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몸이 팔린 가난한 사람은 절대 종이 되거나 종처럼 엄하게 부림 받아서는 안 되고 희년에 자유를 되찾는데 이것이 ‘노동 정의’이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빚을 꾸어줄 때 절대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고, 도저히 갚지 못할 형편일 때는 안식년에 그 가난한 사람들이 진 모든 빚을 탕감해야 하는데, 이것이 ‘대부 정의’이다. 그런데 이사야 58장은 이 네 가지 희년 정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 본문의 배경에는 ‘부채 노예’(빚을 갚지 못해 채권자에게 종으로 끌려간 빈민)의 문제가 있다. 부채 노예들을 두고 부릴 정도의 넓은 땅과 많은 돈을 가진 부유한 권력자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돈벌이’(사 58:3, ‘헤페츠’, 개역개정 성경에서 ‘오락’으로 번역되었으나 문맥상 바로 다음에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가 이어지므로 ‘돈벌이’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를 위해, 모든 백성이 함께 그날 하루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안식하면서 회개해야 하는 금식일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채 부채 노예들을 두고 또 그들을 가혹하게 부리면서 하나님께 왜 자신들의 금식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시냐고 불평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부채 노예 문제는 노동 불의, 토지 불의, 주거 불의, 대부 불의가 하나로 응축된 문제이다. 곧 부채 노예 문제에는 채권자인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고 히브리 사람을 노예로 부릴 뿐만 아니라 모두가 안식해야 할 금식일에조차 노동을 하도록 강요하는 ‘노동 불의’가 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처럼 부채 노예가 되어 노동 착취를 당하게 된 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여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인 토지를 채권자인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담보로 잡아 빚을 갚지 못하면 빼앗는 ‘토지 불의’가 있다.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땅을 빼앗겼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빚을 갚을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부채 노예 문제에는 채권자인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채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마저 담보로 잡고 빚을 갚지 못하면 빼앗을 뿐만 아니라 집 없이 유리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 방을 단 한 칸도 제공하지 않는 ‘주거 불의’가 있다. 그리고 부채 노예 문제에는 채권자인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이나 식량을 꾸어주면서 높은 이자를 받을 뿐만 아니라 부채 탕감을 해야 하는 안식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하지 않는 ‘대부 불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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