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3) 로제 수사의 떼제 수도원을 찾아서
로뎀하우스를 준비하며 내 마음 속에 가장 크게 들어온 단어는 <평화>였습니다. 평화는 히브리어로 살롬(שָׁלוֹם)입니다. 이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 온전함, 안전함, 강건함,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들과 피조물 간의 옳바르고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포괄적인 평화입니다. 모든 삶에 흠이 없는 온전한 평강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저는 지구상에서 이런 평화를 가장 온전하게 구사하는 공동체를 찾아 보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에는 세상이 줄수 없는 평화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보낸 서신마다 문안 인사로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런중 제 마음을 감동시킨 한 공동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로제 수사가 세운 ‘떼제수도원’입니다. 원래 많은 수도원은 평화를 세우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데 떼제가 가진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왜 젊은이들이 1년에 30만명 이상이 기존의 교회를 떠나면서도 떼제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2026년 2월 중순 토요일에 파리에서 차를 몰고 4시간을 달려 시골의 조그마한 마을에 위치한 ‘떼제’를 찾았습니다. 그곳은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클리니(Cluny) 근처의 언덕에 위치한 작은 농촌 마을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8월 로제 수사가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 정착한 곳입니다. 전쟁 중 도피처와 화해의 장소로 시작된 에큐메니칼 수도 공동체입니다. 처음에 그는 유대인을 숨겨주었고, 전후에는 도망가는 독일군을 숨겨 주었습니다. 교파나 인종이나 신분이나 국적을 묻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며 환대했습니다. 처음에는 동네사람들에게 스파이로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삶을 통해 부활하신 참된 예수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저녁7시 ‘떼제’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작은 빵 2개 요구르트 1개 그리고 초코렛티 한잔이 전부였습니다. 너무나 검소한 식탁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도 비슷했습니다. 점심은 스타게티와 초코렛티가 나왔는데 너무나 간소했습니다. 그런 메뉴를 앞에 놓고도 수백명의 다른 국가에서 온 젊은이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담소하며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토요일밤 8시20분 종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교회당 종소리였습니다. 그 강렬하고 진한 감동이 마음속에 전달이 되었습니다. 수천명의 방문객들과 100여명의 수도사들이 성전을 향하여 들어갔습니다. 그 입구에서 ‘침묵(silence)’라는 팻말을 든 봉사자들이 서 있었습니다. 토요일 밤은 촛불예배로 드려졌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1시간 남짓 떼제 찬송을 부르는 것이 예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과 잔잔한 찬송이 누구에게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고, 온 회중이 부르는 찬양의 소리가 천상의 소리처럼 들려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일 아침에 떼제공동체에 대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습니다. 같은 언어를 구성하는 사람들끼리 조를 구성하게 했습니다. 한글 그룹 조는 없어서 저는 영어 그룹 조에 들어갔습니다. 독일어조, 포르투칼어조, 스페인어조, 불어조, 이탈리아어조 등등으로 나누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소그룹 모임이 흥미가 있고 유익했습니다. 저희 조에는 칠레에서 온 부부, 네덜란드에서 온 사람들, 미국 미네소다에서 온 사람,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7시간 차를 몰고 내려 온 사람 등 10명이 한 조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부모가 떼제 수련회에 참석해 결혼한 부부의 딸도 있었고, 여기에 10여 차례 참석하면서 ‘영혼의 고향’이라고 고백한 수련생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가 ‘평화의 안식처’, ‘위로와 힘을 주는 곳’이라 다시 찾게 된다고 간증했습니다.
매일 아침8시, 낮12:45, 저녁8:20 세 차례 예배가 계속 되었습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 기도를 하고 떼제 찬송을 부르는 것이 순서의 전부였습니다. 설교도 하지 않고 아무런 강론도 없고 침묵 기도가 중심이었습니다. 주일예배 때에는 성찬식이 있었습니다. 강단에는 캐톨릭처럼 장식이나 성화가 전혀 없었습니다. 캐톨릭적인 분위기가 좀 남아있지만 개신교적 영성 수도원이었습니다. 해석이나 강론이 없으니 싸울 일이 없었습니다. 평화와 침묵과 환대와 친절과 단순과 청빈이 수도원의 영성을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순수함과 깨끗함과 나를 받아주는 평화의 동산임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박태겸목사 (캐나다동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