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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동네목사개척이야기] 사람 참 순진하기는

사람 참 순진하기는

얼마전 고향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너는 너무 순진해”라는 말을 들었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목회자라서 너무 사람을 쉽게 믿는다는 것이이다. 여기서 순진함이란 타인이 하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것,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의 의도가 따로 있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순진하다’에는 사전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하다.

2.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순진하다’는 깨끗한 마음을 가진 순박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어리숙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런 뉴앙스의 ‘순진함’이란 깨끗하고 맑고 욕심이 없다는 뜻이 없진 않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라는 말을 더 포함하고 있다. 세상 착한 사람이 악당에게 이용당하고 최후를 맞이할 때 악당은 이런 대사를 한다. “순진하긴~”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 모른다” 라는 속담을 남긴듯하다.

그런데 성경에는 순진함과 비슷하지만 다른 뜻의 단어가 있다. 바로 “순전함”이라는 단어이다.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이 아니라 전적으로 라는 뜻으로 비슷한 말로는 ‘순수’라는 단어가 있다.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이라는 말이다. 순진은 마음에 꾸밈이 없음과 세상 물정에 어둡고 어수룩하다는 뜻이라면 순전함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세상살이를 한다는 것은 사사로운 욕심과 개인의 이기심이 자극되고, 지극히 자주 욕심과 이기심이 발아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런 상황에서 자연발생적인 본능에 의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 것인가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세상에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해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단지 비열한 사람일 뿐이다. 신실한 인격의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사람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돌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방법과 수단대로 살아가겠다는 믿음의 방식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만난 사람 중에 나다나엘이 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먼발치에서 보고 “순전한 사람이다” 라고 평가했다. 나다나엘에게서 보셨던 삶의 방식에는 거짓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 ‘간사’한 것이 없는 순전함을 알아보았다. 그런 순전함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욕심과 이기심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순전함은 사사로운 욕심과 잡것이 섞이지 않도록 고집이 있는 상태이다. 가치 기준에 맞지 않는 자극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 있어야 하고 순전함을 지킨다는 것은 각오가 필요하다. 순전함은 대충 대충 남들하는대로 살고 싶다는 유혹도 견뎌내야 한다. 때로는 집단에서 배제되는 아픔도 견뎌내야 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순전함을 가지고 회사 생활을 한다면 세상의 편의주의와 회사의 수익을 위해 불의를 눈감는 관행에 대해 세상 방식으로 따라갈 수 없다. 때문에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영역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완고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순전한 사람은 어리섞기 때문에, 세상 물정 어두워서 순전함을 선택한 게 아니다. 순전함으로 살기로 결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순전한 사람들은 세상 물정 어두운 사람으로 평가하며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이때 순진한 사람이라면 순박함 때문에 남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지만 순전한 사람은 이용하려는 사람까지 품으려는 결단으로 상대방을 대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순진한 사람들’라고 비하하면서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지혜로움보다는 영악함에 더 가까울 것이다. 자기만 아는 사람은 늘 손해 볼까 두렵고, 빼앗길까 불안해 한다. 그래서 많은 걸 소유했음에도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 가득하다. 때문에 이용하기 쉬운 대상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순진한 사람’이라고 얕보고 폄하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렇게 손해볼만한 능력이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대로 순전함을 간직한 그리스도인들은 바보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순전한 바보처럼 살기 위해서는 지혜와 믿음이 필요하다. 세상에 놀아나지 않지만 세상을 보다 큰 마음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고, 그렇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믿음이 요청된다.

성경 속 야곱이라는 인물이 있다. 누구보다 계산기를 잘 두드렸던 사람이자, 늘 남는 장사 하려 했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막바지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총평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다. 꾀를 부리고 잔머리를 굴릴수록 소유는 늘었지만 그만큼 야곱만큼 인생도 꼬이고 어긋났던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큰 대가를 지불하며 인생의 황혼에 이르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았는데 인생의 황혼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사람을 살았어야 했는데 후회를 한 것이다.

무지해서 당하는 건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손해 보는 건 지혜와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차원의 삶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손해 보려는 마음도 없고, 그렇게 살만한 능력도 없기에 ‘사람이 참 순진하기는…’라고 말한다. 모두 자기를 포장하고 감추기 위한 표현일뿐이다. 이런 시대 속에서 순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의 빛을 발하는 순전함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제법 가슴 뛰는 찬란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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