設.來臨 I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I 설.래임 칼럼
사람이 하나님의 주된 위로의 방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7:5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절망적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당시 바울은 3중고에 빠져 있었습니다.
첫째,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건강의 문제), 둘째, 사방으로 환란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의 문제(즉, 외적인 환란과 핍박의 문제)가 있었고, 셋째, 내적 두려움(혼자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가 계속 몰아닥치니 근심 걱정으로 잠도 못 이루고, 누우면 ‘아. 내일은 또 어떡하나?’ 하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바울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건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외부의 위협을 당하는 문제. 이 중 하나만이라도 겪고 있어도 정말 힘들텐데, 바울은 한 번에 건강, 경제, 외부의 위협으로 인한 두려움의 문제를 한 번에 다 겪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야말로 ‘죽고 싶은 심정’ 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바울에게 그 때 하나님은 그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를 주십니다.
고후7: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 )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건강문제, 경제적문제, 외부의 위협이란 삼중고로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느껴질 정도로 낙심한 바울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OO’ 이었습니다.
성경을 펼쳐보기 전에, 위의 공란 안에 들어가면 적합할 말들이 무엇일까 적어보면 아마 이런 류의 답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or (성령으로) or (기도응답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네! 낙심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보편적 방법은 사람을 우리 곁에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교회를 개척한 후 때때로 낙심했던 제게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셨던 ‘디도’가 참 많네요. 제 삶에 찾아와 주셨던 그리고 개척교회의 여정에 기꺼이 참여해주신 모든 디도들께 감사하고, 낙심한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 오늘도 디도를 보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제는 낙심한 누군가에게 디도가 되어 부지런히 찾아가는 인생, 교회가 되겠노라 결심해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된 위로의 방편입니다.
FULLERTON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