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개혁자가 겸비해야 할 두 가지(2)
예수님은 사악한 예루살렘을 위해 우셨다(눅 19:4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선인들을 위해 우신 것이 아니요, 불순종하는 악인들을 위해 우신 것이다. 예수님의 눈물에는 지극한 사랑이 있다. 악인들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원수들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이처럼 예수님은 지극한 사랑으로 불의한 예루살렘을 위해 우신 후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다.
눅 19:45-46, “45.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행동은 예수님이 왕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여 공의를 실행하신 것을 뜻한다. 그리고 장차 예루살렘이 심판받아 그 불의한 거민이 내쫓길 것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행동에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시킨 자들의 악행에 대한 예수님의 의분이 담겨 있다. 희년 교회 개혁과 희년 사회 개혁의 길을 걷는 개혁자들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행동에서, 악인들의 악행에 대한 의분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개혁자들은 대개 공의에 민감하기 때문에, 의분을 갖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의분에서 멈추면 안 된다. 우리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위해 흘리신 눈물(눅 19:41)에서 악인들까지 품으시는 사랑도 배워야 한다. 시 119편의 시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시 119: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나이다.”
시인은 주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악인들의 악행을 보고 의분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시인은 의분에서 멈추지 않았다. 시인은 주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악인들을 보고,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내렸다.
시 119:136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요컨대 악인들의 악행을 보는 시인의 마음에는 의분과 사랑이 모두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고, 개혁자들이 품어야 할 마음이다.
“우시며”(눅 19:41), “내쫓으시며”(눅 19:45)에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먼저 사랑을 품고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를 반(反)희년 교회와 반(反)희년 사회로 전락시킨 불의한 자들을 위해 울자! 그리고 의분을 품고 그 불의한 자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아 만들어 놓은 반(反)희년 교회와 반(反)희년 사회의 온갖 폐단을 모두 없애고,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경우 그 권좌에서 쫓아내자! 그래서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를 모두 희년 교회와 희년 사회로 새롭게 개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