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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사랑에 기초한 자발적인 순종

사랑에 기초한 자발적인 순종

사도 바울은 빛의 열매 가운데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이 찬송과 감사 그리고 서로를 향한 순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서로를 향한 순종의 모습을 가정 윤리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가정 윤리의 모습은 아내와 남편(엡 5:22-33), 자녀와 부모(엡 6:1-4), 그리고 종과 주인(엡 6:5-9)의 관계입니다. 먼저 바울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아내의 입장에서 순종의 관계로 기록하고 난 후에(엡 5:22-24), 남편의 입장에서 사랑의 관계를 기록합니다(엡 5:25-33). 먼저 우리들은 아내의 입장에서 순종의 관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엡 5:22) 아내들이여, 마치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남편들에게 (순종하십시오.) (23) 왜냐하면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몸의 구원자입니다. (24)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함 같이, 아내들도 남편들에게 모든 일에 순종하십시오.

먼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22절의 해석의 문제입니다.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 개정 성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은 22절의 말씀에서 ‘복종하다/순종하다’(to submit)라는 동사를 추가해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NA 27, 28; UBS 5)에는 ‘복종하다/순종하다’라는 동사가 22절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성경은 본문의 문맥적인 의미를 추론해서 21절의 ‘순종하다’(hypotasso: to submit)라는 동사를 22절에 적용해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번역의 결과 성도들이 에베소서 5장 22절의 말씀을 읽을 때에 잘못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개역 개정 성경에 번역이 되어져 있는 ‘복종하다’라는 동사의 한국어 의미 때문입니다. 개역 개정 성경을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라고 번역을 하고 있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아내분들에게 이 말씀이 부담이 되어지는 이유는 본문의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22절의 말씀만을 생각해서 ‘복종’(服從)이라는 의미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복종’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상하 관계(上下 關係)에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지시를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미 에베소서 5장 21절의 말씀에서 생각해 본 바와 같이 빛의 열매 가운데에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에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서로가 자신의 위치를 상대보다 낮게 배치함으로 상호간의 순종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문맥에서 에베소서 5장 22-33절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순종(mutual submission)의 관계입니다.

그러면 에베소서 5장 22절의 말씀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습니까? 먼저 직역을 해 보겠습니다.

(엡 5:22) 아내들이여, ~들의 남편들에게, 마치 그리스도에게

이렇게 번역을 하고 나면 우리들은 바울이 어떠한 의미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이 말씀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함축적인 의미를 찾아서 문맥의 의미를 살려 번역해야 합니다.

(엡 5:22) 아내들이여, 마치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남편들에게 (순종하십시오.)

이러한 번역은 21절의 ‘순종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를 22절에 차용해서 번역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종의 개념은 독재자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강압적(forceful)인 순종이 아니라, 아내와 남편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voluntary)인 순종입니다.

바울의 의견을 1세기 당시의 헬라적 유대교(Hellenistic Judaism)의 문화와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1세기 당시의 문화 가운데에서 아내는 남편과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아래 사람(inferior)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서로 간의 사랑을 기초한 자발적인 순종의 모습으로 당시의 문화 가운데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사랑에 기초한 자발적인 순종의 관계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hoti: because)를 사용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교해서 설명합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하여 바울은 보다 명확하게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정립시킵니다.

바울의 비교를 통하여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개념은 23절에 기록되어져 있는 ‘머리’(kephale: head)라는 헬라어 명사인데, ‘머리’라는 개념은 신체의 중심부로 권한(authority)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23절에서 머리의 개념은 관계(relationship) 속에서 설명이 가능합니다. 교회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서 복음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힘에 의한 상하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유일하신 구원 계획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 기초한 믿음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자발적 순종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라고 하면, 이러한 관계는 남편이 아내를 헌신적으로 사랑한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순종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생각은 고대 로마 시대에 사용하고 있었던 한 가정을 통솔하는 남성이 가족의 죽음까지도 결정할 수 있는 ‘가장권’(파트리아 포테스타스: patria potestas)의 개념을 반대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러면 23절 하반절에서 ‘그분은 몸의 구원자입니다’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들은 ‘그분’으로 번역할 수 있는 헬라어 지시 대명사(autos)가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의 문맥에서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는 그리스도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입니다. 전통적으로 그리고 대부분의 모든 학자들이 ‘그분’은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바울이 지칭하고 있는 지시 대명사 ‘그분’에는 우리들의 몸의 구원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을 내포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구성원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남편의 관계로 설명할 때에 몸의 구원을 이룬다는 함축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께서 교회 공동체를 구원해 주심같이 남편들은 아내들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내포적인 의미를 생각해 볼 때에 교회 공동체가 공동체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함 같이,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모든 일에 순종하는 모습은 남편들의 헌신된 사랑과 보호를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엡 5:24).

바울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통하여 자발적 순종의 모습을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힘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순종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에 근거한 자발적인 순종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을 아내와 남편의 관계로 설명한다면 남편을 향한 아내의 순종은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을 기초한 사랑의 반응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함께 나누기>

  1. 우리들은 에베소서 5장 22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아내로서 거부 반응이 있거나, 또는 남편으로서 이 말씀을 아내에게 이야기 해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만일 이러한 경험들이 있다고 하면 우리들은 에베소서 5장 22절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습니까?
  1.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독재자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강압적인 순종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순종의 관계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우리들의 가정은 강압적 순종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자발적 순종의 모습입니까?
  1. 바울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성도들을 자신의 피 값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고 하면 이러한 관계는 사랑을 기초한 관계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헌신적인 사랑을 기초한 아내와 남편의 관계입니까?
  1. 만일 우리들의 가정이 사랑을 기초한 자발적인 순종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이 배제된 상태에서 나오는 강압적인 순종의 관계라고 하면 우리들은 어떻게 가정의 문제를 접근해야 합니까? 가정안에서 언어적 또는 신체적인 폭력에 의한 강압적인 순종의 모습은 절대적으로 성경적 입장이 아닙니다. 또한 만일 우리들 주변에 이러한 가정이 있다고 하면 우리들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1.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정 안에서 남편의 역할은 더 이상 경제적인 부분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아내의 역할도 가정적인 부분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보호해 주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고 보호해 줄 수 있습니까?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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