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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라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라

요한 마가는 마가복음 2:1-3:6절의 교차대구법(Chiastic Structure)에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사건(막 2:1-12)과, 안식일에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사건(막 3:1-6)을 대칭 시킵니다. 이러한 구조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사건을 통해 죄 용서함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과, 안식일의 주인(막 2:28)으로 예수님께서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회복시키시는 사건을 통하여 안식일의 영적 회복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막 3:1) 그(예수)는 다시 회당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이 그(예수)를 고소하기 위해서 안식일에 그(예수)가 그를 고쳐주는지 세심히 보고 있었다. (3) 그(예수)가 오그라진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일어나 중앙으로 오라” (4) 그리고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악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하지만 그들은 잠잠하였다. (5) 그(예수)가 분노하여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슬퍼하시며 그 사람에게 말했다. “손을 펴라” 그가 손을 폈고,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바리새인들이 밖으로 나가서, 즉시 헤롯 당원들과 함께 그(예수)를 어떻게 죽일지 모의하였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자신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밀의 이삭을 훑은 사건으로 발단된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에서 ‘인자’(the Son of Man)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는 모습은 바리새인들의 큰 이목을 끌었습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따라 함께 회당에 들어갔고, 회당에 있는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회당 안에 있는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이 사람을 어떻게 고쳐 주시는지 세심히 지켜보게 되었습니다(막 3:1-2).

우리가 지난 안식일 논쟁에서 생각해 본 바와 같이 기원 후 3세기 초 랍비 예후다 하나시(Judah ha-Nasi: 135-217 AD)에 의해서 편집된 ‘미쉬나’(Mishnah)의 내용 중에서 명절과 관련된 ‘모에드’(Moed)의 내용 중 ‘요마’(Yoma)를 보면, ‘속죄일’과 관련해서 대제사장이 행하는 의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생명의 위협이 있지 않는 상황이면 안식일에 치료하는 행위는 금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치료가 허용되는 경우는 세 가지로 제한됩니다.

첫째, 생명이 위험할 때의 의료 행위입니다.

둘째, 해산을 해야 하는 여인을 돕는 의료 행위입니다.

셋째,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를 전제로 눈, 코, 귀, 목에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신다고 하면 이러한 치료 행위는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명확히 구약의 율법에 근거한 자신들의 전통을 위반하는 행동입니다.

회당 안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동하시는지를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막 3:2),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어기는 행동을 찾아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하고자 함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회당에서 고쳐 주셨을 때 예수님께서 어떠한 행위를 통하여 귀신을 내 쫓으신 것이 아니라 말로 내 쫓으셨기 때문에 예수님께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막 1:21-28).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른 사항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어떠한 행동으로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면 이것은 명백한 안식일 법 위반이므로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개의치 않으시고,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회당의 중앙에 세우셨습니다(막 3:3).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하십니다(막 3:4).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안식일에 선(agathos: good)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kakopoieo: to do harm), 목숨을 구하는 것(sozo: to save)과 죽이는 것(apokteino: to kill), 이 둘 사이에서 무엇이 옳은지에 관한 대조적인 질문입니다.

회당 안에 있는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안식일에 선이 아니라 악을 선택하고,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을 선택하면, 그들은 안식일의 형식에 메여 안식일의 본질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미쉬나’의 ‘요마’에서도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일은 불법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사건을 기록하면서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마 12:11)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만일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그것(양)을 붙잡아 일으키지 않겠느냐?”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 당시에는 구덩이에 빠진 동물을 안식일에 구조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바리새인들 사이에 다양한 입장들이 공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갈릴리 지방의 바리새인들의 경우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짐승을 끌어올리는 것을 허용하였음을 시사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누가복음을 보면 안식일에 열여덟 해 동안 허리가 굽어서 펴지 못하는 여인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시는 사건(눅 13:10-17)에서, 회당장(the ruler of the synagogue)은 예수님에게 안식일에 이 여인을 고치지 말라고 말합니다(눅 13:14). 그러자 예수님께서 회당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 13:15)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각자 안식일에 너의 황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 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Translated by YG Kim)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아는 것을 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호 6:6). 따라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사건은 안식일 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에 분노를 가지셨고 그들의 완악한 마음(their hardness of heart)으로 인하여 슬퍼하셨습니다. 마음의 ‘완악함’(porosis: hardness)이라는 헬라어 명사는 어떠한 상황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과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안식일에 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안식일 법을 형식적으로 깨닫고 있었을 때 그들의 마음은 완악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펴라”(Stretch out your hand)(막 3:5b)라는 말씀으로만 이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특별히 마가는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치료되었다’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사용하는 ‘회복하다’(apokathistemi: to restore)라는 헬라어 동사의 의미는 ‘가장 좋은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신 사건은 단지 육체적인 회복만을 의미하지 않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영적 회복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마가복음 8장 22-10:52절의 말씀을 잠시 생각해 보면, 마가복음 2:1-3:6절의 교차대구법 구조와 같이, 예수님께서 벳세다에서 여리고로 내려가시는 길 위에서 시각 장애인을 고쳐 주시는 사건(막 8:22-26)은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시각 장애인 바디메오를 고쳐 주시는 사건(막 10:46-52)과 대칭을 이룹니다. 이 두가지 사건의 중앙에 마가복음 8:27-10:45절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심 메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번의 수난 예고입니다(막 8:31; 9:31; 10:33-34). 이러한 구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시각 장애인이 눈을 떠서 실체를 바라보듯이, 제자들이 영적 눈을 떠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십자가의 길을 바라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마가는 예수님께서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손을 회복시켜 주신 사건을 바라보면서 언약의 공동체가 안식일의 본질이 회복되어서 참된 안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처음으로 자신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신 사건으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시작했다고 언급합니다(막 3:6). 바리새인들이 헤롯 당원들과 함께 한 이유는 헤롯 당원들이 비유대계 출신인 헤롯을 지지하면서 로마에 호의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회 체제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에, 율법을 중시하는 바리새인들과 더불어 예수님의 대적자들이 되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를 했습니다.

<함께 나누기>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행위는  구약의 율법에 근거한 미쉬나에 위반됩니까? 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회당에서 고쳐 주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까?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안식일의 핵심적인 가치는 무엇입니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목숨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에서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의 완악함은 어떠한 마음의 상태입니까?
  1. 마가가 예수님께서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셨을 때 그의 손이 회복됐다고 언급한 함축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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