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제자도와 관련된 세 가지 명령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 예고(Passion prediction: 막 8:31)에 이어지는 베드로의 강한 반대와 예수님의 책망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을 향한 첫 번째 가르침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시면서 ‘사람의 일들’(the things of man)과 ‘하나님의 일들’(the things of God)을 구분해서 말씀하시면서(막 8:33), 참된 제자도의 길은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첫 번째 수난 예고에 이어지는 참된 제자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벳세다를 출발해서 여리고로 가는 길 위에서 함께 있었던‘무리’(ochlos: crowd)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막 8:34a). 따라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참된 제자도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총체적인 가르침으로 예수님을 따라는 자들을 향한 참된 제자도의 헌신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막 8:34) 그리고 그(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그 무리를 부르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기를 원한다면 그는 자신을 부인하라. 그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 (35)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신의 생명을 구원하려고 원한다면, 그는 그것(생명)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생명을 나와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잃으면, 그는 그것(생명)을 구원할 것이다. (36) 왜냐하면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37)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위해 무엇을 대가로 주겠느냐? (38) 왜냐하면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악이 가득한 세대 안에서 나와 나의 말들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신의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참된 제자도와 관련된 세 가지 명령법(imperative)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오고자 하는 자들을 향한 참된 제자도의 보편적인 첫 번째 명령은 자신을 부인하는 삶입니다(막 8:34c). ‘부인하다’(aparneomai: to deny)라는 헬라어 동사는 단순히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삶이나, 금욕주의나 자기 부정의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헬라어에서 ‘부인하다’라는 동사는 자기 중심적인 행동을 뛰어 넘어서 철저히 타인 중심적인 헌신적인 삶을 의미합니다(to act in a wholly selfless manner). 이러한 동사의 의미를 본문의 의미에 적용해 보면, 참된 제자도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삶은 ‘하나님의 일들’과 상반되는 세상적, 인간적 가치를 거부하고 하나님 중심적인 헌신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결정적인 모습은 사람 안에서 나오는 마음의 악한 생각들(막 7:20-23)을 버리고, 죄의 뿌리를 제거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제자도의 두 번째 명령은 자신의 ‘십자가’(stauros: cross)를 지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처음 ‘십자가’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에 그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었겠습니까?
1세기 그리스 철학자이면서 역사학자인 플루타르크(Plutarch)에 따르면,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 형을 선고받은 죄수는 자신의 십자가(또는 십자가 일부인 가로 들보)를 지고 처형의 장소에까지 이동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Plutarch, De sera numinis vindicta, 554b; Every criminal who goes to execution carries his own cross),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골고다의 언덕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는 모습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무리들이 처음 ‘십자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 의미는 죽음과 수치스러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 이후에 ‘십자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고난과 배척과 순교를 각오하는 삶으로 그 의미가 바뀌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고(히 12:2),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제자도의 세 번째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akoloutheo: to follow) 삶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명령 가운데에서 처음과 두번째 명령은 헬라어의 시제 중에서 과거 명령형(aorist imperative)으로 행위의 완료가 강조된 시제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명령인 “나를 따라오라”는 현재 진행형 명령형(present imperative)으로 지속적인 인내와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법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은 참된 제자도가 과거의 한 시점에서 일회성을 가진 결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따라가는 삶의 방식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현실적인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처음과 두 번째 명령의 연속 선상에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결과적으로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들’ 곧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고 지속적으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8장 35-38절의 말씀을 통하여 참된 제자도를 따라 살아가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교차 대구법(Chiastic structure)으로 설명합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이유를 나타내는 전치사 ‘가르’(gar: for)를 35, 36, 37, 38절의 처음에 반복적으로 사용해서 참된 제자도가 왜 중요한 이유인지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차 대구법은 A(35) – B(36) – B´(37) – A´(38)의 형식으로 A(35)와 A´(38)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고, B(36)와 B´(37)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차 대구 구조는 A와 A´가 서로 유사한 형태와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구원하고 잃는 것과(35) 예수님과 연결된 종말론적 심판(38)을 언급합니다. 또한 B와 B´의 유사한 질문 형식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얻고도 목숨을 잃는 것의 무익함을 제시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마가복음 8장 35절에서 ‘생명’(psyche: life)은 단순히 육체적 생명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삶을 추구하는 자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기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이기적 욕구와 세상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의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그는 그것(생명)을 잃을 것이다”(막 8:35b)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잃으면 그는 역설적으로 그 생명을 구원할 것입니다(막 8:35c, d).
이러한 삶은 마가복음 8장 38절의 말씀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35절에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 자기 희생적인 결단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결과적으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되어서,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종말론적 심판의 자리에서 그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악이 가득한 세대 안에서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가치를 위해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께서도 종말론적인 심판의 자리에서 그를 부끄러워 하실 것입니다(막 8:38).
마가복음 8장 36-37절에서 반복되는 수사학적인 질문(rhetorical question)들은 참된 제자도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psyche: life)의 무한한 가치와 세상(kosmos: world)의 모든 소유를 서로 명확하게 대비시켜서 영원한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막 8:36).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온 세상을 얻는 것은 세상의 부귀와 권력과 명예와 쾌락을 얻는 일시적인 성공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얻는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이러한 수사학적인 질문은 제자들과 무리로 하여금 세상적인 모든 것보다 한 영혼의 가치가 더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또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육체적 생명을 잃는(apollymi: to lose) 것은 구원으로 이어지지만,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은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심판을 의미합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는 한 영혼의 절대적인 가치의 소중함을 강조함으로써 참된 제자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마가복음 8장 35-38절에 기록되어 있는 참된 제자도와 관련된 예수님의 가르침의 추가적인 내용으로 마가복음 9장 1절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9장 1절의 말씀은 마가복음 9장 2-8절에 기록되어 있는 높은 산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앞에서 변형되는 모습의 예표적 표현입니다.
(막 9:1) 그리고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심으로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 안에서 임하는 것을 볼 때까지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8장 38절에서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에서 오시는 인자의 모습을 9장 1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 안에서 임하는”모습으로 연결해서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 안에서 임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적용이 되었고(막 9:2),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었습니다(행 2:1-4).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성령을 선물로 받는 사건으로 통하여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 안에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마가복음 8:35-9:1절의 말씀은 참된 제자도를 위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세 가지 명령과 예수님의 제자들과 무리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이유에 관한 증거들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사람의 일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들’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함께 나누기>
-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는 참된 제자도와 관련된 세 가지 명령은 무엇입니까?
- 참된 제자도의 첫 번째 명령에서 ‘부인하다’라는 헬라어 동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제자들과 무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들은 이 의미를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 이후에 ‘십자가’의 의미는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제자도의 세 번째 명령이 현재 진행형 명령법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 예수님을 따르는 현실적인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 마가복음 8장 35-38절의 말씀을 교차 대구법(Chiastic structure)으로 설명해 보십시오.
- 마가복음 8장 35-38절의 말씀에서 ‘생명’의 두 가지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과 복음에 순종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 마가복음 9장 1절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