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4회] 규칙 없는 선의는 도박이다
사건이 터진 후 배신감을 토로하는 성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성인군자이길 바란 것이 아니다. 그저 목회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식과 규칙만 지켜주길 바랐을 뿐이다.”
이 소박한 기대가 왜 그토록 지켜지기 힘든 과제가 되었는가? 그것은 우리 공동체가 윤리라는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을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선의’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고결한 인격에 공동체의 운명을 거는 행위는 신앙의 표현처럼 보이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것은 성공 확률에 기댄 ‘도박’과 다를 바 없다.
유동적인 양심, 고정된 시스템
인간의 선의와 양심은 기복이 없는 고체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피로, 스트레스, 주변의 찬사, 그리고 권력이 주는 보상 심리에 따라 언제든 형태가 변하는 액체와 같다. 아무리 훌륭한 리더라도 인간인 이상 유혹과 자기합리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면 시스템은 고정된 고체다. 시스템은 리더의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혹은 리더가 피곤하다고 해서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 건강한 공동체는 인간의 선의를 믿는 곳이 아니라, 인간의 선의가 흔들릴 때를 대비해 ‘경계선(Boundary)’을 긋는 곳이다. 규칙이 없는 공동체에서 리더의 선의는 권력이 되고, 그 권력은 견제받지 않을 때 반드시 타락한다. 우리가 목격한 세습과 재정 오용은 리더의 양심이 마비되었을 때, 이를 깨워줄 ‘종소리(시스템)’가 공동체 내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은혜’라는 이름의 절차 무시
교회에서 규칙과 절차를 세우려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아이러니하게도 ‘은혜’라는 단어다. “은혜로운 게 좋은 거지, 왜 그렇게 사사건건 따지는가?”, “사랑의 공동체에서 법과 절차를 따지는 것은 불신이다”라는 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그러나 절차를 무시한 은혜는 결코 은혜로 끝날 수 없다. 투명한 보고 체계와 객관적인 감사, 공동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생략된 자리는 반드시 사적 욕망이 채우게 된다. 절차는 복잡하고 피곤한 요식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의 거룩함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규칙 없는 선의에 기댄 공동체는 리더가 ‘선의’의 가면을 쓰고 ‘사욕’을 채울 때 이를 막을 논리적 근거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경계선은 리더를 향한 ‘사랑의 장치’다
우리는 리더에게 투명성을 요구하고 견제 장치를 만드는 것을 리더를 향한 불신이나 공격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규칙과 경계선은 리더를 범죄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고, 그가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눌려 파멸하지 않도록 돕는 ‘사랑의 장치’다.
아이에게 경계선을 그어주는 부모가 아이를 미워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듯, 공동체가 리더에게 엄격한 윤리적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은 그를 오랫동안 건강한 목회자로 곁에 두기 위함이다. 세습이라는 유혹 앞에 선 리더에게 “이것은 공동체의 규칙상 불가능하다”라고 말해줄 시스템이 있었다면, 그는 오늘날과 같은 비참한 몰락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스템이 부재한 곳에서 리더는 자신의 욕망을 신의 뜻으로 오해하기 가장 쉽다.
신앙은 도박이 아니라 ‘실천적 구조’다
흔히 “믿음으로 맡긴다”는 말을 리더의 개인적 도덕성에 모든 것을 위임하는 뜻으로 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은 철저히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연약함을 전제한다. 따라서 참된 신앙은 인간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죄로 흐르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감시하는 구조를 세우는 실천이다.
이제 우리는 ‘사람의 성품’에 베팅하는 위험한 도박을 멈춰야 한다. 대신 ‘구조의 투명성’을 세워야 한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공동체의 운명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견고하게 버텨줌으로써 어떤 리더가 오더라도 복음의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는 지형을 만들어야 한다.
양심의 광장을 규칙의 울타리로 보호하라
개인의 양심은 소중하지만, 공동체 전체를 지탱하기에는 너무나 깨지기 쉬운 기반이다. 한국 교회가 반복되는 세습과 권력 독점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하나다. 리더의 선한 의지에 호소하는 단계를 넘어, 선한 의지가 없어도 작동할 수 있는 ‘윤리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가장 거룩한 곳일수록 가장 정교한 규칙이 필요하다. 그것이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는 겸손이며, 공동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식이다. 다음 글에서는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성도들의 삶과 교회의 지형 자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형’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한다.
“은혜로 덮자”는 말이 혹시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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