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김치남 목사의 하나님의 교육명령 제6회 문지방의 위기와 영적 부모의 눈물

[칼럼: 하나님의 교육명령] 제6회 문지방의 위기와 영적 부모의 눈물

제6회 | 문지방의 위기와 영적 부모의 눈물

  처음 온 사람은 대개 조용하다.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에도, 자리로 걸어가는 순간에도, 찬양이 시작되는 순간에도. 조용히 앉아 있다가 조용히 일어선다. 인사를 건네면 미소를 보이지만, 말은 짧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가장 먼저 출구를 찾는다. 그 사람은 아직 ‘안’과 ‘밖’ 사이에 서 있다. 한 발은 안에, 한 발은 밖에 둔 채로. 가끔은 그 조용함이 더 크게 들린다. 교회 안이 떠들썩할수록, 한 사람의 침묵은 더 선명해진다. 새로 온 사람은 ‘싫어서’ 조용한 게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조용한 경우가 많다. 어디에 서야 하는지, 언제 일어나야 하는지, 어떤 말투로 인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내 마음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그 낯섦을 사람은 말보다 눈으로 먼저 견딘다.

차가운 문지방, 망설이는 마음들

  나는 그 자리를 ‘문지방’이라고 부르고 싶다. 문지방은 집의 일부이면서도 아직 집이 아니다. 잠깐 머물 수는 있지만, 오래 서 있기에는 차갑다. 그래서 문지방의 위기가 생긴다. 숫자로는 늘어나는 것 같지만, 이름으로는 남지 않는 위기다.

  문지방이 차가워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신앙의 언어가 낯설고, 어떤 사람에게는 공동체의 리듬이 낯설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좋아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사정이 작아 보일까 두렵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 곧 위험처럼 느껴진다. 문지방은 그래서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망설이는 자리다.

초대를 넘어선 정착, 환영을 넘어선 돌봄

  문지방의 위기는 큰 사건으로 오지 않는다. “안 나와요”라는 한 문장이 전부다. 연락이 끊기고, 메시지가 늦어지고, 어느 주일부터 빈자리가 자연스럽게 고정된다. 우리는 그 빈자리를 ‘또 다른 새 가족’으로 채우려 한다. 그러나 빈자리는 숫자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문지방을 넘게 하는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체온이고, 체온은 관계에서 나온다.

“교회는 초대하는 데에 힘을 쏟는 반면, 붙드는 데에는 종종 방법을 잃는다. ‘잘 오셨습니다’라는 인사는 많지만,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라는 동행의 질문은 적다.“

  문지방을 넘어 ‘집’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많은 경우 그것은 아주 작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순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순간, 내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요즘 어땠어요?”라는 질문이 습관처럼 돌아오는 순간. 사람은 설교의 문장에 감동하여 올 수 있지만, 관계의 문장에 붙잡혀 남는다. 그래서 교회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환영의 기술이 아니라 ‘기억하는 공동체’의 문화다.

  기억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기억은 ‘나는 여기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감각을 준다. 그리고 그 감각은 상처 입은 사람에게는 거의 복음처럼 들린다. 세상은 사람을 쉽게 대체한다. 앱도, 직장도, 관계도. 그러나 교회는 사람이 대체되지 않는 공동체여야 한다. 이게 어려운 이유는, 교회도 바빠서가 아니라, 바쁨을 ‘미덕’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셋이 필요하다. 바쁨을 줄여야 돌봄이 생긴다.

질문이 허용되는 공간과 영적 부모의 태도

  성경에서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로 불렸다. 그는 강단의 스타가 아니라, 곁의 사람으로 교회를 세웠다. 사울이 모두에게 두려움의 이름이었을 때, 바나바는 사울을 품고 사도들에게 데려갔다. 누가 울타리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는 문을 여는 사람이어야 한다. 바나바는 문을 여는 사람이었다. 문지방에 서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바나바 같은 영적 부모다.

  정착의 핵심은 ‘질문이 허용되는 공간’이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상처받았다. 어디서든 정답을 강요받았고, 어디서든 속았고, 어디서든 평가받았다. 그래서 교회가 또 하나의 평가장이 되면 사람은 남지 않는다. 반대로 질문이 살아 있는 공동체, 실패가 숨겨지지 않는 공동체, 회개가 문화인 공동체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풀린다. 풀린 마음은 머물 준비를 한다.

168시간의 검증, 그리고 반복이 만드는 문화

  정착은 결국 168시간에서 검증된다. 주중에 무너지는 순간, 그때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 교회가 ‘건물’로만 남아 있으면, 월요일의 사람은 혼자다. 그러나 교회가 ‘사람’으로 존재하면, 월요일에도 교회는 곁에 있다. 한 문장 메시지, 한 번의 전화, 한 번의 식사, 그리고 한 번의 기도. 그 작은 연결이 사람을 문지방에서 안으로 데려온다.

  반복의 힘은 단순하다. 첫 주에 인사했던 사람이 둘째 주에도 인사하고, 셋째 주에도 같은 자리에 앉아주며, 넷째 주에도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 반복이 누군가의 마음에 ‘여기는 안전하다’는 문장을 새긴다. 정착은 대형 이벤트가 아니라, 작은 반복이 만든다.

  문지방을 집으로 바꾸는 데에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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