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善) ①, 창조주의 성품
에덴 동산은 인간이 생활하기에 완벽한 장소였습니다. 그곳은 아름답고, 흠이 없고,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풍성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그곳에 100만 종이 넘는 생물들, 25만 종이 넘는 식물들, 그리고 10만 종이 넘는 과일 나무들이 있었고, 이 다양한 자원들이 조화롭게 서식했다고 분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동산을 이처럼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드신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신부를 위해서 신랑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인 사람을 위해서 이 동산을 만드셨습니다. 에덴 동산을 인간 세상에 처음 소개한 저자는 그곳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일곱 번이나 반복 기록합니다. 평가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좋았다”라는 히브리어 “토브”는 선한 (good), 만족한 (pleasure), 즐거운 (joyful), 아름다운 (beautiful), 기쁜 (glad), 유쾌한 (delightful), 소중한 (precious), 옳은 (correct), 행복한 (happy), 그리고 복지 (welfare)의 뜻이 있습니다.
동산의 그 풍성한 모든 것을 아담과 하와에게 공짜로 제공하신 하나님께서는 딱 하나만 예외로 두셨습니다. 창조자의 권위에 순종을 통한 보호와 축복을 보장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금하셨습니다. 행복한 에덴 동산에 사탄을 뜻하는 뱀이 등장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좋다고 제안합니다. 그 말에 유혹되어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을 보니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도 좋으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이곳에서 좋은 평가의 주체는 하나님이 아닌 이브입니다. 자신의 기준에 따라 좋다고 평가한 이브는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사람의 평가로 좋았지만 그 결과는 풍요와 아름다운 동산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에덴 동산 이야기가 인류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선과 악에 관한 기준입니다.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악인지를 보여줍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보기에 좋고 먹기에 좋아도 하나님의 평가로 좋지 않으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역으로 사람의 기준으로 좋지 않아도 하나님 평가로 좋은 것은 선인 것입니다. 성경 단어 백과 사전은 “선”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아가도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단순한 언어는 최대한 넓은 의미에서 ‘좋다’는 뜻이다. 거기에 아름다운 것, 매력적인 것, 유용한 것, 유익한 것, 바람직한 것,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포함된다. 이 모든 의미를 연결하는 개념이 ‘평가’다. 선한 것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어떤 물건이나 특성이나 행동을 다른 것과 비교해 봐야 한다. 창조 이야기는 성경적인 ‘토브’ 개념을 소개한다. 하나님이 매일 하신 일을 보면서 좋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하나님도 평가를 하신다. 인간이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사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가 인간의 지각을 왜곡해 버렸다. 이 때문에 하나님만이 완벽한 평가를 하실 수 있다. 구약 성경의 기자들은 하나님이 선한 것을 주시는 분이시고 선의 척도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한 것이 무엇이며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고 확신했다.”
고대 저술가들의 작품들도 선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며 평가 기준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주후 3세기, 이집트 북부 해변 지역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오리겐은 아가도스에 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아름답고 축복이다. 하나님의 그 성품들은 질적으로 최상의 아름다움과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어떤 신도, 악마도, 그리고 인간도 선이 될 수 없다. 하나님 홀로 선이시며 다른 곳에는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 무엇에게도 선하다고 말하면 않된다. 왜냐하면 선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은 양도 할 수 없으며 하나님과 분리 할 수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홀로 선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의 본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이시고, 선은 곧 하나님이다.”
기원전 1세기에 살았던 유대 철학자 필론 (혹은 필로)은 최상의 선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힘과 재능적 능력을 소유하시는데 그 근원은 진리에 기초한 아가도스, 즉 선인 것이다. 누구든지 이 우주가 창조된 원인을 조사하고자 한다면, 고대인 중 한 사람이 말했듯이 ‘아버지시며 창조주께서 선하셨다’고 말한다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에 속한 탁월한 속성을 창조물들에 아낌없이 나눠 주는 것을 주저하신 않으신다. 피조물은 그 자체에 아무 좋은 것이 없다. 대신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선의 기원인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봉사할 때 가장 완벽하고 최대의 선을 얻게 됩니다.
『영웅전』으로 잘 알려진 1세기 그리스 작가 플루타크도 선에 관해서 자세히 다룹니다. 그는 선은 실제로 존재하는 남성을 지명하는 명사로서 하나님을 언급한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플라톤은 원자재 (창조물들)를 빈곤이라 불렀고, 원자재는 선이 결핍이 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원자재는 언제나 하나님을 갈망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채워졌고, 또한 하나님과 함께 세상에 나눌 수 있었다.” 필론과 마찬가지로 플루타크도 선의 유일한 공급처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선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올바름이란 무엇이며 올바른 개인과 올바른 국가는 어떻게 세워지는지를 논한 『국가론』에서 플라톤은 선에 관하여 이렇게 기술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모든 옳고 아름다운 것의 홀로 원인이 되시며, 보이는 세계에 빛을 낳으시고, 밝음의 창조자이시며, 이해 가능한 세계에 계신 그 자체가 진리와 이성의 참된 근원이시니라. 개인적인 삶에서 혹은 공적인 생활에서 현명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이 선을 따라야 한다.”
고대 작가들은 일관성 있게 선은 하나님 속성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선에 대한 이러한 고대의 개념은 성경에서 근원했습니다. 1세기 팔레스타인에 거주했던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사회에서 정직하고 매우 도덕적이고 관습에 순종적이었습니다. 그가 간음을 하거나 살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속이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부모를 존경해 왔으며 모범 시민이었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예수님께 “선하신 선생님”라고 칭하며 말을 건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라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
예수님은 인간은 선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선의 평가 기준이 됩니다. 인간에게 지혜를 깨우쳐 주는 잠언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