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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구원 (2), “기독교의 독특한 특징”

 구원 (2), “기독교의 독특한 특징” 

파리스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이나 모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 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선택한 트로이의 왕자입니다. 그가 세상 여인들 중의 최고 미녀인 그리스의 왕비 헬레네를 빼앗아 갑니다. 아가멤논 장군은 왕비를 구하기 위해 거대한 병사를 거느리고 트로이를 향해 배를 타고 떠납니다. 도중에 맹렬한 북풍이 불어와 배가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어린 소녀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면 북풍이 멈추고 서풍이 분다는 예언자의 신탁에 따라 아가멤논은 사람을 보내서 자기 딸을 데려옵니다. 그는 진노한 바다 신을 달래기 위해 딸을 죽여서 바칩니다. 그 결과 서풍이 다시 불어 함대는 위기에서 벗어나 트로이에 도착합니다. 트로이 전쟁 전설의 일부인 “파리스의 헬레나 사랑” 이야기는 분노한 신들로부터 인간이 구원받는길을 암시합니다.        

   모든 곳 그리고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이방 종교의 신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곧 잘 기분이 상해서 인간을 고통에 빠뜨립니다. 변덕스런 신들의 비위를 달래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제물을 헌납하는 것입니다. 제물이 클수록 효과는 더해지며,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는 큰 희생이 동반되지만 최상의 효과를 얻는 수단입니다. 이방종교에서 이처럼 진노한 신에게 제물 헌납 행위는 한 개인이 고통에서 구원받기 위한 일반 원칙으로 반드시 치러야 하는 곤혹스러운 절차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제물을 드림으로 인간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종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들이 만든 나무와 돌과 일월성신과 같은 어떤 우상도 인간이 당한 재앙에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대신에 사람이 진노를 피하여 구원 받는 길은 오직 한 분의 희생을 통해 이뤄졌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기독교를 모든 이방 종교로부터 완전히 차별화 시킵니다.  이 진리에 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었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구원이라는 어휘의 뿌리인 히브리어 “이시아”는 하나님께서 인간 삶에 개입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경우에만 합법적으로 발생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따라서 신약 성경에 구원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소테리아”는 하나님의 전유물로 하나님께만 속해 있습니다. 누가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소개할 때,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고 밝힙니다.    이 단어의 이러한 배경은 구원 즉 소테리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독교의 독특한 특징을 형성합니다. 

   첫째, 소테리아는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신약에서 소테리아의 모든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고,  하나님은 태초부터 구원을 위해 사람들을 선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살후 2:12). 그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목표이며 (딤전 2:4), 그 소테리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입니다 (벧후 3:15).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딤후 1:9; 계 19:1), 이 구원을 성취하도록 예수 그리스도께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셨습니다 (계 7:10).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현실화 하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딤전 1:15). 요한은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을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밝힙니다 (요 3:17).

   둘째, 소테리아는 거부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소테리아의 특성으로 인해 구원은 사람이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빌 2:12). 한 개인에게 구원이 아무리 소중한 것일지라도 여전히 사람들을 통해 무시될 수 있습니다. 신약은 인간의 위험한 자유 의지가 하나님의 목적인 구원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은 매우 위대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것 역시 벌을 받게 되는 행동이 된다고 말합니다 (히 2:3).

   셋째, 소테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한 중에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다른 이로써는 소테리아를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외쳤습니다 (행 4:12). 예수 그리스도는 소테리아의 개척자이시며 (히 2:10), 소테리아의 근원이시며, 그리고  구원을 이루시는 원인입니다 (히 5:9).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인류 사회에 소테리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테리아는 인간 대리인을 요구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에 관하여 유대인 중 일부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힙니다 (롬 11:14). 바울은 구원을 위한 자신의 행동 양식을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라고 설명합니다 (고전 9:22).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믿지 않는 배우자를 떠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왜냐하면 그 신자가 믿지 않는 자를 구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7:16). 그는 젊은 디모데에게 신앙의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조언합니다 (딤전 4:16). 하나님 앞에서 사도 바울이 집중하며 소망했던 것은 인간 구원이었습니다 (고전 10:33). 신약 성경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구원에 관해서 말한 입술과 그분을 대신하여 일할 손과 그분을 위해 복음을 전할 사람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기독교 메시지가 “구원의 말씀”인 것이 확실합니다. 구원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대한 좋은 소식입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구원의 길”입니다. 그 길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 아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기독교 메시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 힘은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 길을 갈 수 있는 힘, 그 일을 대신 이룰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소테리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서셔서 힘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통하여 전도의 말씀이 완전히 전파되게 하시고, 모든 이방 사람이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구원하셔서 그분의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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