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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설교 (4), “하나님의 자기 계시”

설교 (4), “하나님의 자기 계시”

천상의 궁전이 신성한 빛으로 물들여지는 이른 아침에, 영원한 하늘의 법정에서 신들의 회의가 열립니다. 모든 신들과 인간 세상의 왕인 제우스가 주재하는 이 모임의 안건은 불공평한 처지에서 고난 당하는 오디세우스를 해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결론과 동시에 헤르메스 (허매)에게 명령이 내려집니다. 그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신들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신입니다. “헤르메스, 하늘의 택함을 받은 사자여! 전령자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하라. 제우스의 명을 받들어 오디세우스를 해방하라.” 신들의 메세지를 들고 헤르메스가 전령자들에게 오자, 그들은 “황금 지팡이의 신이시여! 무슨 전갈을 이곳에 가져 오셨습니까?예상치 못한 손님이시여, 사랑받는 당신이시여! 당신의 명령이 하달되면 저희들은 기쁨으로 저희의 의무를 다해 순종할 것입니다.”  

   위의 글은 설교의 개념과 행위가 무엇인지를 언급하는  호모의 『오디세이아』에 나타난  내용으로 기독교 초기 자료입니다. 헤르메스는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누구에게서 온 것이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설교자, 즉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는 그분의 존재, 행위, 그리고 목적에 대한 확신이 분명해야합니다. 설교자가 믿는 하나님의 종류에 따라 그가 전하는 설교의 종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성경은 설교자가 확신해야 하는 하나님에 관한 세 가지 요소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지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자신의 백성과  쉼없이 소통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모든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합니다. 그 결과, 선지자들은 이교도자들의 말이 없는 우상들을 조롱했습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느니라”고, 그들은 살아 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우상을 대조했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고,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해서 지금 말씀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지금 행동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창조된 우주 안에서 자신의 권능과 신성을 나타내시어 하늘과 땅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시편의 저자들은 일관성 있게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드러내는 도다”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활동은 그분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제 그언약의 말씀을 이루시는 일을 행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이 되어 고통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출애굽 시켰습니다. 바벨론 유배에서 그의 백성들이 처참한 굴욕을 당하던 때, 그들을 불러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아 보셨다”고 밝힙니다. 언약 성취를 위해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에 관해서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활동에 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인류 창조 때부터 일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일해 오고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둠과 대조되는 빛입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성경에서 빛에 관한 상징은 다양하고 풍부합니다. 하나님은 깨끗함에 있어서 완전하다는 것을 나타낼 때 빛으로 표현합니다. 성경에서 빛은 악을 상징하는 어둠과 비교되는 최상의 순수함과 깨끗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빛은 어둠을 물러가게 하여 사람들이 일할 수 있게 해주며, 농작물의 성장을 낳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고, 또한 안전을 제공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빛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빛을 숨기지 말고 인간 사회에 비추라고 명령하십니다. 빛의 본성이 비추는 것이듯, 하나님의 본성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십니다.    살아 계시고, 밝은 빛이시며, 지금 말씀하시고,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모든 기독교 설교의 토대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결코 설교단에 설 수 없으며,  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설교할 내용이 있을 수 없으며, 이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해 행동하지 않으시면 설교는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불과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시고, 행동하시므로 자신의 살아 계심을 알리시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의 목적을 선포하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설교자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아모스가 표현했듯이,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사도 바울도 자기 이전의 설교자들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계시를 위해서 말씀하시는 이 진리를 믿기 때문에,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확신은 설교자에게 두려움이나 타협없이 담대하게 메시지를 선포하게 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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