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아! 그런뜻이었구나 설교 (9), 관리자인 케룩스

[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설교 (9), 관리자인 케룩스

설교 (9), 관리자인 케룩스

많은 경우 케룩스 (전령 혹은 설교자)는 매우 수다스럽고 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테베의 국왕의 전갈을 받은 케룩스는 한 도시를 방문해서 왕을 대신해서 법령을 선포합니다. “이 도시에 대한 국왕의 호의로 나는 에테오클레스가 이곳의 좋은 땅에 묻히도록 명령한다. 그는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경건함으로 조상들의 신성한 종교를 따랐다. 그는 젊은이들이 존경하는 이곳에서 아무 비난 없이 죽었다. 이것이 내가 왕께 받은 법령이다.” 이 내용을 전한 후에 케룩스는 자신이 왕으로부터 받지 않는 다른 법령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의 형제인 폴리네이케이스의 시체는 도시 밖으로 내던져 매장하지 않고 개들에게 찢기도록 명령한다. 그는 죽어서도 조상의 신들에게 지은 죄의 오점을 간직할 것이다.” 케룩스가 계속해서 폴리네이케이스를 비난하자, 한 시민은 “쓸데없는 명령을 금하시오!”라고, 그의 말을 끊습니다.

   교회사에서 설교자로 이해되는 케룩스는 언제든지 자신의 견해나 꾸며낸 거짓 메시지를 전달할 위험이 있어 왔습니다. 전달 받은 메시지를 벗어나서 자신을 높이고 유익하게 하는 내용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설교자는 받았던 메시지만을 전달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내용의 핵심은 메시지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 뒤에 있는 더 높은 권위와 힘에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자신을 보낸 주인의 대변인입니다.

   고대사회에서 그들은 단순히 평범한 심부름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가정의 일을 돌보는 종” 혹은 “충성스러운 신하”로 불렸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케룩스는 분명히 높은 평가를 받는 사회계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관리자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단순히 하인이 아니라 주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영광스런 동반자이며 전령이었습니다. 설교자는 자신을 위임한 자의 마음을 받아 들이고 그의 전권적 권위를 가지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케룩스는 종종 집의 관리인이나 청지기를 뜻하는 “오이코노모스”와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와 “분배하다” 혹은 “관리하다”는 “네모”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있습니다. 고대 희랍어 사전은 “오이코노모스”가 어떤 사람인지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한 가족의 관리자 혹은 가정의 일들을 맡은 자; 특별히 한 집의 우두머리나 땅의 지주로부터 가사 전체 관리와 재정 출납 의 돌봄과 그리고 모든 하인과 심지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자녀들에게 각각 적절한 몫을 분배하는 임무를 위임받은 청지기, 관리자, 혹은 감독자. . . 은유적으로 하나님의 권고를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직임을 받은 자이다.” 관리자인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신 믿음의 집에서 하나님의 권고를 맡아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이며, 성도들은 “믿음의 가족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설교자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은 이와같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관리인에게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 관리자는 다른 사람의 재화를 맡은 청지기 혹은 분배자입니다. 이와 같이 설교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성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충성스럽게 나누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의 메시지는 구약의 선지자 혹은 초기 교회의 사도처럼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선포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처럼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도 아닙니다. 대신 그의 메시지는 현재 자신에게 맡겨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관리인입니다. 관리자는 집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맡긴 “비밀”을 가족 구성원들에게 분배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에서 요구되는 삶의 태도는 충성입니다. “충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맡은 자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첫째는 설교자에게 힘을 주는 원천입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소개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설교자에게 맡기신 성스러운 위탁입니다. 하나님의 위탁은 충성을 다 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과 함께 영광스런 인생의 사명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맡은 일을  “나는 사명을 받았다”라고 표현했는데, 그가 사용한 단어는 관리직을 받았다는 “오이코노미아”입니다.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일은 자신이 마땅히해야 하는 업무이며,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 고백합니다. 말씀 공급을 기다리는 믿음의 가족들 앞에 설교자는 하나님께 위탁받은 자신의 업무를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두번째는 설교자의 위탁받은 업무 그 자체에 대한 충성입니다. 그는 자신이 위탁받은 하나님의 것이 손실되지 않도록 그것을 가족들에게 부지런히 나누어 줘야합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설교자는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집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도록 위탁받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 직임을 주신 이유를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밝힙니다. 

   세번째는 설교자가 갖는 권위입니다. 설교자가 자신의 직임에 충성을 다 하는 이유는 자신이 수여받은 어떤 권위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말씀을 전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자신의 심정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 사명을 이룰 수 있었던 근원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이라고 밝합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일에 수반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 우리 모두는 나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부적격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는 내가 아닌 성경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로 자신의 사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네번째는 설교자는 메시지를 공급하는 자가 아닌 공급받는 자인 것입니다. 관리자가 자신의 창고에서 곡식을 가져 와서 주인 집의 식구들을 먹일 것을 기대하는 주인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설교자에게 스스로 메시지를 고안하여 믿음의 가족들을 봉양할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자원의 공급자는 주인입니다. 설교자의 직무는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씨를 뿌리는 자이며, 그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설교자는 집 주인이 위탁한 것을 충성을 다 해 관리하는 자입니다.

이남규 목사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