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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여성 (3), “그대의 사명”

여성 (3), “그대의 사명”

오란이 첫아들을 낳을 때 남편 왕룽은 “우리 두 남자는 아이를 낳을 때 아무 능력이 없어. 우리 아버지께서는 내가 당신 방에 들어가는 것 조차 부적절하다고 했소. 내 서툰 손이 아이에게 해를 끼칠지도 몰라”라고 말하며, 산파를 불러 오겠다고 제안합니다. 오란은 고개를 저으며, “내가 부를 때까지 아무도 방에 들어오지 마세요. 갓 껍질을 벗긴 갈대를 가져 와서 쪼개주세요. 아이의 탯줄을 내 손으로 잘라야 해요.” 그녀는 산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 생명의 탄생인 창조질서를 스스로 완수합니다.  

   가뭄으로 가축조차 잡아먹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오란은 자식을 위해 남편의 나약함을 꾸짖고 생존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남쪽으로 가서 구걸을 할지언정 땅은 지켜야 합니다. 자식들을 살려야 해요.” 

   냉혹한 피난길에서 자신의 가슴이 얼어붙었지만, 오란은 자기 몸에서 떼어낸 아기를 품에 꼭 안아 온기로 아기를 보호합니다. 가정이 부유해지자 남편이 첩을 두어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의 소중한 보석을 빼앗아 갈때, 그녀는 남편의 모욕에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눈물을 훔치면서도 그녀는 남편의 옷을 꿰매고 그의 식사를 준비합니다. 왕릉이 늙고 병들었을 때, 그가 머리를 기댈 곳은 화려한 첩이 아니라 묵묵히 자리를 지킨 아내 오란의 곁이었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날 결혼식을 마친 새 며느리를 불러서 자기 가정과 식구들을 부탁합니다. “나는 이제 만족한다. 딸아, 네 남편과 시아버지와 시아버지의 아버지를 잘 보살펴라. 너는 누구에게도 신세를 질 필요가 없다.” 아내를 장사하고 돌아 오는 길에 남편 왕룽은 혼잣말을 합니다. “내 삶의 좋은 절반, 아니 절반이상이 땅에 묻혔구나. 이제 내 집에서는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193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인 『대지』에서 저자 펄 벅이 묘사한 여성의 삶입니다. 오란은 당시 상황과 특정 문화 속에 희생적인 여성상으로 그려지지만, 저자는 생명을 낳고 성장하게 하고 가정을 실질적으로 지탱하게 하는 중심인물은 여성인 것을 보여줍니다. 자녀의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의 강인함은 또한 완악한 남편에게 부드러운 순응으로 반응하여 그를 바로 서게 하는 독특한 지혜의 소유자입니다. 선교사의 딸이었던 펄 벅은 성경적 시각으로 여성의 일생을 표현했습니다.   

   인류 역사에 여성의 첫 등장을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남녀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실이 강조된 문장입니다. 전통적으로 형상은 “창조주와 공유하는 정신적 그리고 기능적 자질들,” “사람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신체가 하나님과 닮음,”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격”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여성의 구체적인 형태는 남자와 관계해서 “돕는 배필”로 설명합니다. “돕다”는 히브리어 “에제르”는 하나님이 인간을 도울 때 사용됩니다. 돕는다는 것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더 강하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여성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독처하는 남성의 고독과 연약함을 채우는 완성의 열쇠입니다. 두 사람이 결합할 때 비로소 온전한 인류가 온전히 성립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기능과 관계해서 여성의 임무는 “임신과 출산”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이 수반되는  출산은 여성에게 자녀를 즐겁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성만이 가진 “임신과 출산” 그리고 “희생적 양육”은 남성은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여성에게만 허락된 고유의 영역으로 인류를 위한 거룩한 직무입니다. 이 질서는 여성에게 부여된 이름에서 확인됩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생명”을 의미하는 하와는 생명의 탄생과 보존 그리고 전수하는 존엄한 사명을 담은 말입니다. 그래서 여성을 “모든 산자의 어머니”로 정의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과 여성을 비유로 말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태어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긍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함”은 여성의 자궁을 뜻하는 “레헴”과 어원이 같습니다. 이와같은 언어적 연결은 고대인들이 여성의 자비 능력을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 내재한 근원적인 힘으로 이해했습니다. 여성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자녀를 양육하고 보호하고 필요를 공급하는 모성적 본능애입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준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베푸시는 자비의 가장 완벽한 모형입니다. 

   여성의 지위는 인류 구원의 역사에서 그 정점을 찍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실 때, 남성의 개입 없이 오직 “여자의 후손”을 통해 오게 하셨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인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남자를 알지 못한 한 여성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출산한 여성은 가정을 단순한 물리적 주거 공간을 넘어 신앙이 전수되는 거룩한 성소로 세우는 숭고한 사명을 가진자입니다.

     의사이며 작가로 활동했던 폴 트루니에는 자신의 명저 『여성, 그대의 사명은』에서 여성의 가치는 그녀가 처한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기혼과 미혼, 가정과 일터라는 외적인 자리를 불문하고, 이 땅의 모든 여성은 그 존재 자체로 고귀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물로서가 아닌 인간 그 자체의 존엄성을 최우선 가치로 회복하는 사명입니다.” 이 사명의 근거는 창조주께서 태초부터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말씀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태초부터”라는 표현은 단순히 옛 시간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근원적인 의지, 즉 창조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의 개념에 내재된 조화와 충만함은 남성과 여성의 불가분한 상호 보완에 있습니다. 이 원리는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 가운데 분명히 나타납니다. 생식 번식의 사명은 여성의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여성만이 지닌 고유한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문명의 진화 방향을 바꾸어 더욱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여성만의 숭고한 소명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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