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강하게, 흘러가는 신앙으로 살아가기
첫번째 책 ‘나를 위한 처방, 너그러움’에 이어 나온 아운디 콜버의 책 ‘물처럼 강하게’를 나눈다. 전작에서는 늘 긴장하고 완벽하려는 ‘과기능 상태’를 멈추고, 내면의 안전기기를 구축하도록 한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억지로 버티며 단단해 지는 것 대신에 유연한 회복탄력성을 갖도록 돕는다.
언제부터인가 슬픔도, 두려움도, 지친 마음도 얼른 추스르고 다시 씩씩하게 일어서는 것만이 ‘믿음 좋은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이처럼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키며, 온 힘을 다해 버텨내는 ‘강함’은 과연 우리를 복음 안에서 참으로 자유롭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영적 영양실조와 번아웃으로 몰아넣고 있는가?
저자는 젊은 나이에 파혼과 실직이라는 인생의 거대한 파도를 맞이하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던 자신의 이야기로 글을 연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낀 그 절망의 순간,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진짜 강함이란 자신을 갉아먹으며 이를 악물고 버티는 힘이 아니라, 나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단단한 사랑이라는 기초 위에서 부드러우면서도 담대하게 흐르는 법을 배우는 것임을 깊이 배운다. .
‘물처럼 강함’이라 함은 파도가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결국 거대한 바위를 깎아내고 지형을 바꾸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직관적인 이미지를 통해 보면 신앙 안에서 부드러움과 강인함은 결코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가장 온전한 강함은 가장 깊은 부드러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상황적 강함’과을 강조하나, 성경은 ‘회복적(전환적) 강함’을 더욱 중요하게 본다. ‘상황적 강함’은 위기의 순간, 재난의 때에 인간이 본능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텨내는 힘이다. 이 힘은 일시적으로 우리를 살아남게 하지만 이 상태가 만성화될 때 결국 내면의 소진, 깊은 불안증, 그리고 타인 및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이어진다. 반면 ‘회복적 강함’은 슬픔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되, 나를 용납하시는 하나님과 나를 지지해 주는 이웃 안에서 안전함과 연결감을 되찾아가며 점진적으로 얻게 되는 힘이다.
우리 몸의 신경계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스트레스를 이겨내도록 설계하셨다. 동시에 그 몸의 한계를 넘어서는 궁극적인 안전지대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만 발견된다고 증언한다.
광야를 걷는 성도들을 위한 영적 이정표를 제안한다. 먼저 참된 신앙은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훈련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가져가는 것이다. “괜찮은 척” 가면을 쓰는 신앙보다, 하나님 앞이기에 비로소 “나 지금 전혀 괜찮지 않다”고 통곡할 수 있는 신앙이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한 믿음이다. 또 교회 공동체는 서로의 연약함과 실패를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도피성’이 되어야 한다. 오직 상황적 강함과 승리주의만을 은혜라는 이름으로 미화하는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은 가면을 쓴다. 진정한 영적 회복은 내 부끄러운 이야기와 약함을 그 어떤 정죄나 판단 없이 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해 주는 지체들과 연결될 때 시작된다. 셋째, 우리의 몸을 돌보는 것은 세속적인 일이 아니라 영성의 핵심적인 일부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영과 육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몸의 고통을 무시하곤 한다. 그러나 쉼을 주는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심어두신 ‘안식’의 질서를 존중하는 거룩한 예배다. 끝으로, 참된 강함의 뿌리는 내 의지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다. 그 사랑 안에 머물 때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 보라. 그분은 결코 감정이 없는 단단한 바위 같은 분이 아니셨다. 그 어떤 인간보다 부드럽고 솔직하셨던 예수님은, 동시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끝까지 걸어가신 가장 강인한 분이셨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예수 안에서 완전히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바다 안에서 유연하게 흘러가되, 세상의 그 어떤 환난과 핍박에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물과 같은 강함’이다.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버텨내는 신앙’에서, 은혜의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신앙’으로. 경직된 ‘상황적 강함’에서 유연하고 안전한 ‘회복적 강함’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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