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해의 한 모범_김카리스
재미 있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한 줄 시였는데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가느다란 몸 부수어 쥔 총칼, 터, 평화.” 혹시 이 문장에서 어떤 특이점을 발견하셨나요? 다시 읽어 보시겠어요? “가느다란 몸 부수어 쥔 총칼, 터, 평화.” 힌트를 드리죠. 이 시의 가제, 임시 제목이 ‘ㄱ에서 ㅎ까지’ 입니다. 찾으셨나요? 네. 한 글자 한 글자 순서대로 살펴보면 이 시가 한글 자음의 순서대로 ㄱ, ㄴ, ㄷ, ㄹ. . .ㅎ 순으로 문장이 만들어진 것이 보입니다. 시인이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기억을 돕기 위해 고안한 방법인데 독자들은 그 덕분에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며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고 시의 의미가 더 깊게 느껴집니다. 시의 맛이 더해진 듯합니다.
시편 34편이 바로 이렇게 구성된 시편 중 하나입니다. 한글 성경을 읽을 때는 알 수 없지만 원어 성경을 보면 히브리어 알파벳 스물 두 글자가 각 행의 첫 단어 속 첫 글자로 각 절에 정렬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히브리어 알파벳의 여섯 번째 문자인 와우(waw)로 시작해야 하는 구절이 누락되어 있고, 마지막 절에는 열 일곱 번째 알파벳 페(pe) 를 한 번 더 추가한 변칙이 발견되긴 합니다(34:22). 그런데, 시편 34편 뿐 아니라 시편 25편도 이런 변칙을 사용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는 시인의 정교한 노력으로 고려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이유를 이를 통해 시의 중심이 알파벳의 12번째 문자인 라메드(lamed)로 이동되고, 시작 글자(알렙, aleph), 중간 글자(라메드, lamed), 그리고 마지막 글자(페, pe)를 조합하여 “배우다, 가르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ʾālaf (배우다/ 가르치다)가 되어 교육적 가치를 더 강조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시인은 알파벳이라는 정형화된 틀을 의도적으로 깨뜨려, 이 시의 최종 목적지가 하나님의 ‘구원과 속량’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마지막 절의 첫 단어 ‘속량하다(padah)’를 넣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의도적 문학 장치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으나 시편 25편에서도 동일한 단어가 마지막 첫 단어에 나타납니다. 시인이 그 만큼 정교하게 시를 구성하려 노력에 노력을 더했을 가능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시편 34편에서 알파벳 순의 이 구조 말고도 곳곳에 교육과 전수를 염두에 둔 기제가 또 보입니다. 다음 한글 성경의 4절부터 7절을 보시죠. 쉬운성경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여기서 시인은 개인인 나의 고백과 여럿에 대한 권면을 교차로 배치합니다. 4절, 6절이 개인적 하나님의 체험이고 5절, 7절에선 무리로 확장된 믿음의 조언이 읽힙니다. 내 개인의 경험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전달합니다. 그리고 직접 체험해 보라고 강력히 권면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고 보편적 가치를 추출하여 전수합니다. 개인적 하나님 체험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보편적 신앙 고백으로 확장하는 전형적인 지혜 교육의 형식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8절에서 시인은 더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외칩니다. 여기서 “맛보아”라는 히브리어 동사가 재미 있게 쓰였습니다. טָעַם (ta`am)이라는 단어 인데 8절 뿐 아니라 이 시편의 표제어에서도 등장합니다. 어떤 한글 단어가 이 단어로 번역되었는지 맞춰보시겠습니까? 표제어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입니다. 이 문장에서 טָעַם (ta`am)과 같은 어근의 단어는 “미친 체하다가”라는 구절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의역된 구절인데 원어에는 ‘그의 행동을 다르게 하면서 (in his changing his behaviour)’라고 적혀 있습니다. 말하자면 다윗이 자신의 평상시 행동 방식처럼 정상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טָעַם (ta`am)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던 ‘만나’처럼 어떤 음식의 맛을 말할 때 사용되기도 하고, 또, 비유적으로 확장되어 맛을 느끼는 감각에서 출발하여 인지, 판단, 식별 등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 표제어의 배경이 되는 사무엘상 21장에서 12절과 13절은 다윗은 “심히 두려워”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라고 적고 있습니다. 개역개정은 “행동을 변하여”라고 원어대로 번역하고 “미친 체”라는 설명을 더했습니다. 다윗이 스스로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 “부끄러움”을 겪고 이 개인적인 고난의 후기 격인 시편 34편에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마치, ‘나는 왕의 자존심을 버리고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면서까지 생명을 지키려 했던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의 선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들도 그 선하심을 맛보십시오! 그에 피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11절에서 시인은 자녀들을 부르며 이제 직접적으로 자신이 ‘가르치겠다’고 선언하며 본격적인 지혜의 교사로 나섭니다. 기억의 보조 수단이 다양하지 않던 시대에 시인은 몸의 부분을 활용하여 직관적인 시각 교육을 합니다. 13절에서 너의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너의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하라고 구체적인 행동을 조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도 신체를 통하여 알려줍니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그리고는 이 악인에 비교되는 의인을 더 자세히 설명함으로 철저한 ‘대조’의 교육법, 또, 희망에 이르는 경로를 설정하여 실행 동기를 갖춰주는 교육으로 시인은 시를 마무리 짓습니다.
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22.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사실, 다윗이 미친 체하다가 도망 나와서 지은 이 시 속에서 궁극적 피난처, 구원의 주,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으신 십자가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예표 된다는 것으로 읽은 요한의 교육이 먼 후대인 우리에게는 이 시편 독해의 좋은 한 모범입니다(요한복음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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